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간사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며칠간 계속되는 장맛비로 여름답지 않게 날씨가 서늘해서 활동하기는 좋았으나, 높은 습도로 사방이 끈적거리고 눅눅해서 기분이 유쾌한 편은 아니었다. 이럴 때면 햇살이라도 좀 비치어 기분전환이라도 하고 싶은데, 막상 날씨가 개여 한여름 뙤약볕 무더위에 사나흘만 생활하다 보면 또다시 시원한 빗줄기가 그리워지곤 한다. 하루씩 번갈아 가며 비 오고 갠 날이 계속되면 농작물과 사람에게 좋을 텐데, 세상살이가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모처럼 햇살이 비치니 농촌에는 분주하게 사람들이 들판을 오간다. 장맛비에 웃자란 논밭의 잡초도 제거해야 하고, 고온다습한 날씨에 활개를 쳤던 농작물의 적, 병해충도 방제해야 한다. 몇 평 되지 않는 텃밭이지만 하루라는 기나긴(?) 시간을 투자하여, 자식같이 아끼는 콩, 땅콩, 깨 등 농작물에 대한 보살핌을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 겸 산책길에 나섰다. 어디로 가볼까 고민하다 오늘은 저기 북서쪽에 보이는 동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고민하는 시간은 항상 그리 길지 않다. 어떤 장소이든 어렸을 적의 추억이 배어 있어 옛 정취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길가의 논에는 초여름에 모판으로부터 이사 온 벼들이 새로운 토양에 적응하여 튼튼히 뿌리를 박고 쑥쑥 자라나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등진 후, 말씨 다르고 인심 다른 타향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농사일은 많이 수월해졌다. 모심기부터 추수하기까지 거의 기계화가 진행되어, 요즘 농촌에선 농번기에도 들판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모내기하던 시절, 모심는 기계는 만들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던 농촌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얼마 되지 않아 이양기라는 것이 등장하였다. 하긴 요즘에는 알파고라는 인간을 이기는 컴퓨터까지 등장했으니...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논두렁 따라 걷다 보니 인기척에 뭔가가 수로 속으로 첨벙거리며 도망간다. 소리의 강도로 보건대 덩치가 소만 한 황소개구리인 듯싶다. 한때는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이 개구리를 포획해 가면 마리당 얼마씩 돈을 지급했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젠 이 생명체들의 개체수도 줄어들었다. 농약의 오·남용과 환경파괴로 생물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이 들판에서, 살아남은 저놈들을 대체 뭘 먹고사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들길을 따라 걷노라니,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인 야산의 아래 부근까지 도착했다. 높이가 그리 높지 않고 경사가 완만한 야산이라 해도 한여름 무더위에 산을 오르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은 그렇다 치더라고 곳곳에 쳐놓은 거미줄이나 쌓인 낙엽, 썩어 널브러진 나뭇가지를 헤치고 오르려니, 정글 속을 헤집고 전투에 나서는 병사 같은 기분이다. 땔감을 산에서 구해야만 사시사철 밥이라도 끓여먹을 수 있고, 겨울철에는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옛날, 벌거벗은 산비탈에 지게를 받쳐 놓고 "찰떡을 굴러도 티끌 하나 묻지 않겠네" 하고 탄식하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다.
예전에는 산림보호라는 명목으로 심지어 산에서 낙엽과 같은 간단한 땔감조차도 채취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렇다고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수는 없어, 한밤중에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를 통째로 잘라오기도 하여, 오히려 산림을 더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가스로 취사하고, 전기나 기름으로 난방을 하기에, 산에 가서 땔감을 하라 해도 아무도 가지 않는다. 달라진 인간의 삶이 자연환경을 바꿀 수 있는 예라 생각되었다. 무슨 일이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지, 임기응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산허리를 개간하여 일군 과수원에서는 배와 감들이 한여름의 햇볕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한때는 농촌서 부자의 상징이었던 과수원도 요즘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였다. 일손부족, 인건비 상승, 농자재 값 상승 등으로 과수원의 수지를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주위에 과수원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말이 쉬워서 포기지, 과수원을 포기하면 과일나무들이 멋대로 자라고, 칡이나 가시박 같은 덩굴식물들이 나무를 감고 올라가, 수십 년에 걸쳐 기른 과일나무들을 베어 내어야 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오르는 도중 만난 무덤 몇 기, 무덤의 주인공은 대부분 예전에 알고 지냈던 동네 어르신들이다. 옛날 천하를 호령하던 그 기개는 어디 가고 적막한 이 산중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외로이 누워 계십니까? 무덤 주위의 풀벌레 소리만 나지막이 들린다.
드디어 도착한 옛 동산의 정상, 야트막한 야산이라곤 하지만 정상에서는 시야가 일망무제로 탁 트인다. 저 멀리 북쪽으로는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위로 차량들이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고, 그 너머로 고층아파트와 빌딩을 짓기 위한 타워크레인들이 두 팔을 벌리듯 늘어서 있다. 강가의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문전옥답에는 벼 대신 고층건물들이 쑥쑥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고 무엇이랴?
고려 말 충신이었던 야은(冶隱) 길재는 멸망한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둘러보고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없네"라고 한탄했었다. 그 당시에는 기술이 부족하고 변변한 장비도 없어 산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산천은 의구하다는 표현이 나왔을 것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옛 동산에 올라"에는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려"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소나무 한 그루 베어지고 없는 것으로 산천은 의구하지 못하다고 했다. 길재나 이은상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천지개벽과도 같은 풍경을 보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적당한 어휘를 찾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발아래로는 영천강이 예나 지금이나 조용히 굽어 흐르고 있으나, 이전의 그 모습은 아니다.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면서 군데군데 웅덩이와 수양버들로 그늘을 만들어 여름철 우리의 놀이터를 제공했던 영천강이 계속되는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확장 및 직강공사로 인해 황량하고 밋밋한 하천으로 변해 옛 정취를 잃었다. 더구나 인간들에 의한 수질오염으로 인해 강에서 서식하던 뱀장어나 쏘가리, 메기, 잉어, 은어 등 고급어종과 다슬기, 재첩, 말조개 등 패류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생 무렵 하천 확장공사를 위해 강바닥까지 내려간 불도저의 삽날에 밀려온 자갈과 흙이 강바닥의 웅덩이를 메우는 순간, 허옇게 배를 뒤집으면서 생매장당하던 뱀장어와 메기, 잉어들의 마지막 모습을! 그 당시만 해도 온갖 생명체들로 가득했던 우리의 강들이 훗날 이렇게 죽음의 강으로 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인간의 삶이 자연환경을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현장에 서 있는 것이다.
불과 반백년 사이에 변한 것은 자연의 시각적인 모습뿐만 아니다. 예전에는 비록 가난했지만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효심이, 형제간에는 우애가, 사제 간에는 존경과 사랑이 있었다.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이러한 아름다운 전통들은 점차 퇴색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옛날 국어책에서 읽은 "의좋은 형제"의 스토리까지, 두 형제가 한밤중에 남의 볏가리에서 자기 볏가리로 볏단을 옳기다가 서로 마주쳐 멱살을 잡고 싸운다는 내용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너무 급작스레 변화하고 있는 주위의 환경들에 대해 이제는 삶의 편리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그로 인한 부작용이 더 걱정된다. 조만간 그야말로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가 그동안 소중한 것을 너무 많이 잃고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