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와 말복이 지나가고 나니 아침, 저녁 공기의 촉감부터 달라진다. 숨이 막힐 듯이 푹푹 찌던 대기가 어느새 약간은 쌀쌀한 기운이 감돌 정도이다. 장마철인 7월에는 비는커녕 햇볕만 쨍쨍 내리쬐던 하늘이 8월 중순인 이제 와서 검은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며칠간에 걸쳐 비를 뿌리고 있다. 이제야 장마가 시작되려나?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어수선하니, 이놈의 계절도 정신 줄을 놓아버린 모양이다. 때늦은 비이지만, 그동안 가뭄과 더위로 타들어가던 농작물에 모처럼 생기가 돈다.
날씨가 서늘해지는 이맘때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미꾸라지를 푹 끓여 만든 추어탕이 그것이다. 추어탕(鰍魚湯)의 "추"는 가을 추(秋)가 아니고, 미꾸라지 추(鰍)이다. 하긴 이 글자도 고기 어(魚) 변에 가을 추(秋) 자가 결합된 문자이고 보니, 가을과 관련된 음식이기는 한 모양이다.
추어탕의 주재료인 미꾸라지는 대개 봄에 알에서 깨어나, 늪이나 논 혹은 농수로 등 진흙이 많은 곳에 주로 살아간다. 이들의 먹이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장구벌레, 진흙 속 유기물 등이다. 미꾸라지가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에 이것이 모기 퇴치를 위한 천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어류는 장 속으로 공기를 넣어 공기호흡을 할 수 있어, 산소가 부족한 물에서도 살 수가 있다. 따라서 수질오염이 심화되는 환경 속에서 최후까지 살아남는 생명체가 바로 이 종이다. 가을철, 늪이나 농수로에 물이 끊기면 미꾸라지는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곳에서 겨울을 나는데, 이러한 섭생도 공기호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길쭉하고 거무튀튀하게 생긴 데다가 입 주위에는 수염마저 달려 있는 이 물고기는 누치처럼 희고 깔끔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은어처럼 깨끗한 물에서 사는 동물도 아니기 때문에 예로부터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미꾸라짓국 먹고 용트림한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시시한 일을 해 놓고 큰일을 한 것처럼 으스대거나, 하잘것없는 사람이 잘난 체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된다.
출처 : doopedia.co.kr.
미꾸라지는 단백질과 비타민 A의 함량이 높아 여름 동안 더위로 잃은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채식 위주의 우리 조상들에게 이 존재는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며, 농사일로 쇠약해진 몸을 회복시켜주는 일등 공신이기도 했다.
미꾸라지는 주로 추어탕의 재료로 이용되어 왔으나, 때로는 튀김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추어탕은 지역에 따라서 끓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경상도식은 맨 먼저 미꾸라지를 삶아 으깬 다음, 데친 풋배추, 고사리, 토란대, 숙주나물, 파, 마늘을 넣고 끓인다. 어느 정도 끓인 후, 다홍고추, 풋고추를 넣고 조금 더 끓인 다음, 불을 끄고 방앗잎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추어탕을 그릇에 담아 먹을 때 초핏가루(산초)를 넣는다. 전라도식은 경상도처럼 미꾸라지는 삶아서 끓이지만, 된장과 들깨즙을 넣어 걸쭉하게 끓이다가 초핏가루를 넣어 매운맛을 낸다. 서울에서는 미리 곱창이나 사골을 삶아 낸 국물에 두부, 버섯, 호박, 파, 마늘 등을 넣어 끓이다가, 고춧가루를 풀고 통째로 삶아 놓은 미꾸라지를 넣어 끓인다.(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1, 2011, 현암사)
출처: 아름다운 우리 향토음식, 정재홍, 2008, 형설출판사.
강이 휘감아 돌아가면서 만들어낸 고향 앞 들판은 예로부터 많은 물고기들의 보금자리였다. 강 상류에 만들어진 보(洑)에서 흘러온 강물은 실핏줄처럼 나 있는 수로를 통해 벼를 심은 논 구석구석까지 시원한 물줄기를 공급하였다. 수로를 따라 물속에서는 어린아이 키만큼 자란 물풀들이 물결 따라 일렁이고, 그 사이로 붕어, 메기, 미꾸라지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수면 위에서는 소금쟁이들이 물에 빠지지 않으려는 듯, 기다란 다리를 분주히 움직이며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가을이 되어 벼가 익기 시작하여 농수로에 물이 끊기면, 수로 바닥의 조그만 웅덩이에 온갖 종유의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그곳에는 진흙을 뒤집어쓴 미꾸라지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웅덩이에 남은 마지막 물 한 방울마저 말라버리면 대부분의 생명들은 허연 배를 뒤집은 채 죽어간다. 이때를 놓칠 새라 두루미나 개구리, 뱀 등은 이곳으로 모여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모처럼의 진수성찬을 즐긴다. 이런 (피) 비린내 나는 전투의 현장에서도 미꾸라지는 땅 속을 파고 들어가, 위기를 넘기면서 모진 생명을 이어가곤 했다.
어렸을 적, 미꾸라지는 우리에게도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강이나 도랑에 고기잡이 가면 메기, 은어, 가물치, 잉어 등 고급어종이 우리의 주된 관심사였고, 별로 호감이 가지 않게 생긴 미꾸라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긴 요즘에는 귀해져서 구경하기도 힘든 민물뱀장어나 민물 게도 당시에는 그리 인기 있는 어종은 아니었다. 족대나 그물에 이들이 걸리면 징그럽다고 질겁하면서 내던지기가 일수였으니까...
세월이 흘러 초등학생 정도가 된 무렵, 고향마을에서도 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여 먹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내가 추어탕이라는 음식을 접한 최초의 시기였다. 그 후 사람들은 가을철이면 수시로 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여먹곤 했다.
미꾸라지 잡는 방법도 이 물고기가 사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 강이나 하천 등과 같이 수량이 많은 곳에서는 족대로 바위 밑이나 수초 밑을 뒤져 잡는다. 논에서 물을 빼는 경우나 실개천 등 수량이 적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대나무 통발을 사용한다. 농수로나 작은 도랑 등지의 얕게 물이 고인 곳에서는 물을 퍼낸 후, 진흙을 손이나 삽으로 파서 그 속에 숨은 미꾸라지를 손으로 잡는다. 하찮아 보이는 이 동물도 피부에 미끌미끌한 액체를 분비하여 쉽게 잡히지 않도록 하는, 나름대로 자기방어의 기전(機轉)을 가지고 있다. 미꾸라지라는 이름은 이러한 상황에서 유래된 듯하다.
미꾸라지라는 단어를 접하면 나는 특히 두 가지의 추억이 떠오른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는 미꾸라지 잡이에 쓸 대나무 통발 대여섯 개를 사 오셨다. 가을철, 벼가 누렇게 익어갈 때면 논의 물을 빼기 시작하는데, 이 물줄기를 따라 미꾸라지들이 내려온다. 어떤 경우에는 미꾸라지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행진을 하면서 내려오기도 했다. 이 물줄기에 대나무 통발을 놓으면 미꾸라지들이 이 통발 속으로 들어간다. 아침이 되면 나는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통발에 잡힌 미꾸라지들을 수거하러 갔는데, 통발마다 갇힌 미꾸라지들로 묵직하였다. 양동이의 미꾸라지들은 집으로 가져와서 커다란 드럼통에 보관하였으며, 며칠 만에 드럼통이 가득 찰 정도였다. 미꾸라지를 내다 팔아 생긴 수입은 당시 생계에 큰 보탬이 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출처: 한국의 박물관: 대나무, 한국박물관연구회, 2005, 문예마당.
미꾸라지도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보호색을 띤다. 여름에는 수초나 진흙처럼 거무튀튀한 색으로 천적을 피한다. 가을이 되어 벼가 익으면 미꾸라지도 누렇게 변하는데, 이를 두고 우리는 미꾸라지가 "익었다"는 표현을 썼다. 미꾸라지가 익을 때면 어머니는 잡아온 미꾸라지를 대야에 담아 소금을 뿌렸다. 소금을 맞은 미꾸라지는 함석지붕에 우박 떨어지듯 날뛰면서 몸속에 있는 진흙을 뱉어내고 피부의 끈적끈적한 분비물을 분리한다. 어머니는 까칠까칠한 호박잎으로 기가 죽은 미꾸라지들을 비벼 깨끗이 닦았다. 이어 펄펄 끓는 솥에 이들을 넣고 푹 고운 후, 건더기만 건져 으깬 다음, 체에 걸러 살만 남은 미꾸라지 국물을 다시 솥에 넣고 갖은 채소와 양념을 넣어 추어탕을 만드셨다. 이 추어탕은 가난과 입시 준비로 단백질과 원기가 부족했던 나의 학창 시절, 신체적 성장과 기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요즘, 추어탕 집에는 가급적 가지 않으려고 한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이 메뉴를 고집하면 마지못해서 따라가긴 하나, 식사시간 내내 꺼림칙한 기분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 추어탕집이나 재래시장에서 만나는 미꾸라지들은 예전의 청정한 자연 속에서 누렇게 "익은" 미꾸라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땅에서 생존하기조차 힘든 이 생명체가 어디에서 양식되고, 어느 나라에서 수입되었는지 알 수 없다. 오염에 강하기로 소문난 이 생물의 몸속에는 또한 얼마만큼의 중금속 등이 농축되고 있는지 알 길도 없다.
고향의 들녘은 막 패어난 벼이삭들로 가득 차 있다. 벼논 사이로 난 수로에는 이젠 더 이상 미꾸라지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모질고 억척스러운 동물도 농약으로 범벅이 된 논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모양이다. 미꾸라지조차 없는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며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추억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