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고 남부지방에는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은 용광로의 쇳물처럼 뜨거운 열기를 토해낸다. 집 안팎에 심어놓은 들깨나 호박의 잎사귀들도 내리쬐는 햇볕에 축 늘어졌다.
건너편, 지난봄에 논을 메워 밭으로 전환한 터에 밭작물로 처음으로 심은 고구마들도 생기를 잃었다. 이 밭의 주인은 시내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70이 넘은 노인인데, 부지런하기가 개미 같다면 서러워할 정도다.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다 보니, 체격이 호리호리하고 허리가 잘록한 게 꼭 개미 닮았다. 이 노인은 겨우내 거의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더니, 덤프트럭과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하여 2,000여 평이나 되는 논을 밭으로 바꾸었다. 봄이 되자 새로 조성된 밭을 경운기로 갈아엎고 비닐멀칭까지 하더니 그 넓은 땅에 고구마를 심었다.
그런데 이 아마추어 농부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고구마는 논흙과 같이 찰기가 있고 물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땅에서는 줄기와 잎만 왕성하게 자라고 뿌리(정확하게 말하면 덩이줄기)는 가늘고 길쭉해져 생산성과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작물은 오히려 자갈밭처럼 척박하고 배수가 잘 되는 토양에서 자라야 뿌리의 크기도 굵어지고 맛도 있다. 농작물을 선택할 때에는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을 고려하여 거기에 적절한 품종을 택해야지, 무턱대고 아무 작물이나 재배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요즈음은 주변의 농촌지도소에 가면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 성분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농작물을 선택해 준다. 비닐멀칭용 비닐, 퇴비, 비료 등 농자재를 구입을 위한 직접적 비용뿐만 아니라, 고구마 경작에 들어간 본인의 인건비나 다른 작물을 심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기회비용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도 만만찮았을 것인데 작황이 별로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내 가슴까지 아프다.
고구마는 옛날부터 심한 가뭄, 병해충, 기근 등으로 벼, 보리 등의 주식(主食)을 재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 농작물을 대체하여 심던 구황작물로 널리 경작되어 왔다. 고구마의 이러한 속성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이 작물이 가뭄이나 병해충 등에 강하고, 따라서 차라리 산비탈의 자갈밭과 같은 거친 환경에서 더 잘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구마는 추위에는 약한 식물이다. 이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이른 봄에 보온용 온실부터 만들어야 한다. 지어진 온실 바닥을 깊게 파고 그 속에다가 볏짚이나 퇴비 등을 채운 다. 이 거름들은 땅 밑에서 발효하면서 열을 발생시켜 온실 속 고구마가 얼어 죽지 않게 하고, 새 순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퇴비를 부드러운 흙을 덮은 다음, 종자용 고구마를 가지런히 배열하여 다시 흙으로 덮는다.
온실 속에서 고구마 순이 자라나면 순을 가위나 칼로 잘라 밭에 옮겨 심으면 파종이 끝난다. 고구마는 생존력이 강해 가뭄에 잎이 말라도 비가 오면 줄기에서 새로운 잎이 자라난다. 그러나 서리가 내리면 고구마 잎은 대부분 말라죽으며, 수확된 고구마를 추운 곳에 두면 대부분 썩어 버려 예전부터 따뜻한 방에 보관하곤 했다. 겨울 내내 방 속에서 수분이 증발된 고구마는 단맛이 농축되어 날것으로 먹어도 맛있었으며, 부모들은 아이들이 이를 훔쳐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구마를 보관하던 나무 궤짝에 못질을 하곤 했다. 보관해 두었던 종자용 고구마를 초봄에 온실에 넣고 남은 고구마를 삶아 먹을 때의 달콤하고 고소했던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쌀이 부족하여 밥으로 배를 채울 수 없었던 때에는 이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곤 했다. 고구마는 늦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수확하며, 이 무렵이면 부족한 식사량을 채워 주는 일등공신이었다. 이 작물은 수확량도 많아 고구마 한 포기에 대여섯 개의 고구마 덩이가 달려 나오곤 했다. 땅 속 묻힌 고구마를 쇠스랑으로 일일이 캐내는 수확 작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흙속의 아이 머리만 한 고구마를 쇠스랑으로 찍어버려 못쓰게 되면, 아버지에게 혼날까 봐 도로 묻었던 적도 많다. 수북이 쌓인 고구마를 가마니에 넣어 지게로 운반하던 작업은 더욱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다. 이 작물은 저장성이 약하기 때문에 가을까지 수확된 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말린 절간고구마(속칭 빼때기) 형태로 보관을 하는데, 겨울에는 이것을 삶아 죽으로 만들어 점심식사로 대용하기까지 했다. 이런 점에서 고구마는 가난의 상징이었고 배고픔의 화신이었다.
한겨울, 수확이 끝나고 텅 빈 고구마 밭에는 쥐구멍이 나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구멍을 따라 파고 들어가면 대부분 가을철 수확하다 놓친 고구마가 나온다. 쥐는 그들의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춥고 배고픈 겨울에 이렇게 먹이를 찾아내는데 그들의 생존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쥐들보다 능력이 떨어져, 땔감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허기질 때면 이들 동물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예로부터 밥 대용으로 고구마를 많이 먹어온 나로서는 고구마를 좋아할 리가 없다. 어렸을 적 이후로 고구마를 입에 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고구마가 다이어트에 좋다느니, 체내에 나트륨 등 중금속을 배출한다느니, TV나 신문에 떠들어 대더니 급기야 고구마 붐이 일어났다. 인간이란 간사한 동물이라 했던가. 주위에서 자꾸 떠들어대니 어디 한 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서 일어난다.
다행히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도로에 편입되고 남은, 그야말로 자갈밭이 100평 정도 있어 재작년에 고구마를 조금 심었다. 예전부터 이 밭에서는 고구마가 잘 자라 왔으며 이번에도 그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두어 광주리 수확한 고구마를 보관하였다가 겨울에 닭갈비용 두꺼운 철판을 꺼내 군고구마를 만들었다. 고구마는 뭐니 뭐니 해도 구워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오랜만에 맛보는 고구마의 맛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었다.
배고플 때 허기로 쏙 들어간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해 먹었던 고구마가 세월이 지난 지금 튀어나온 배를 들어가게 하기 위해 먹고 있다. 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예나 지금이나 고구마라는 피사체는 그대로인데 사진사가 요리조리 돌려가며 촬영하여 서로 다른 관점에서 찍은 모습을 보고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일한 사진에 대해 개개인이 다르게 느끼고 있는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고구마라는 사물의 본질은 변함이 없는데 그 사물에 대해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그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물에 대해 새로운 정보가 알려졌거나, 그 사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달라져 생길 수 있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어찌 고구마뿐이랴? 어제의 정치적 동지가 오늘의 정적이 되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우방이라 생각했던 나라가 오늘은 우리의 적이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상대방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개인이나 국가 상호 간에 호감이 생기거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극히 사소한 일, 혹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상대방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인간 개개인의 삶에 대한 확고하지 못한 철학이나 가치관의 부재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겨우 이태 고구마를 재배했던 자갈밭도 금년에 도로확장 부지에 편입되어, 이젠 이 추억의 농작물을 심을 땅조차도 없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면서 고구마를 풍요롭게 제공하던 그 밭이 마지막으로 없어지니 아쉽고 허전한 마음 헤아릴 길 없다.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작년 그 밭에서 마지막으로 심은 고구마가 100년에 한 번 필까 말까 한 꽃을 피웠다. 고구마 꽃말은 행운이라 하는데, 거창하게 세계 인류의 번영과 행복까지는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와 내 개인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