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맛과 관련된 고사성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어두육미(魚頭肉尾), 대미필담(大味必淡) 구맹주산( 狗猛酒酸), 초근목피(草根木皮)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대미필담은 정말 좋은 맛이란 반드시 담백(淡白) 한 것이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서, 어떤 음식이든 진정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 음식이 우선 담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미필담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 혹은 식재료는 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은 아무런 맛이 없으며, 담백하기로는 다른 어떤 음식이나 식재료를 능가한다. 물은 우리 주변에 흔할뿐더러 수시로 먹거나 마시고 있기에, 우리는 그것의 진정한 맛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날 들판에서 땀 흘리고 일한 후 갈증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마시는 한 바가지의 시원한 물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는, 그야말로 꿀맛이라 할 수 있다.
담백하면서도 별다른 맛을 내지 않는 또 다른 식재료 중의 하나가 무이다. 무 역시 그냥 먹으면 거의 맛을 느낄 수 없다. 무맛은 글자 그대로 무(無) 맛인 셈이다. 그러나 무로 담근 동치미는 시원하고 담백한 맛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이다. 이 음식은 무와 물, 그리고 약간의 소금만으로 만들어진 100% 천연식품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자연적인 식재료로 이런 훌륭한 맛을 내는 식품은 찾아보기 드물 정도이다.
무가 주재료인 음식은 동치미 외에도 깍두기, 뭇국, 무나물 등이다. 이들 메뉴 모두 무 본질의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무로 만든 음식들은 대개 모양이나 맛에 있어서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깍두기나 뭇국의 경우, 양념으로 들어간 고춧가루 때문에 빨간 색깔을 띠고 매운맛이 나는 것이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 무나물의 경우는 색깔이나 맛 모두가 소박하고 은은할 따름이다.
무는 음식메뉴나 식재료에 있어서 보조제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해 낸다. 이 식물은 배추가 주재료인 김치에 첨가되어 시원한 맛을 낸다. 생선조림이나 찌개에 보조 식재료로 들어간 무는 이들 음식에 청량감을 더해 주고 산뜻한 맛을 배가시킨다. 라면을 끓일 때 무를 넣으면 매운맛이 줄어든다. 게다가 라면의 국물 맛이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워진다.
식재료로써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무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약재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여 왔다. 옛날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면 무를 푹 삶아 그 물을 마시곤 했다. 이것은 소위 무차인 셈인데, 조상들은 이 무차로 감기를 예방하고 치료했던 것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양념할 때에도 무즙이나 무채를 넣으면 육질이 연해진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무는 천연소화제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무가 가진 이러한 유용성으로 인해 나는 해마다 텃밭에 무를 심는다. 지난 초겨울, 서리를 맞아 육질이 부드러워진 무를 수확하여 하루 동안 햇볕에 말렸다. 습기가 증발하여 약간 시들해진 무를 신문지에 싼 후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서늘한 1층 창고에 고이 모셔두었다. 무나 배추는 약간 말린 다음 저장하여야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이렇게 보관된 무는 겨우내 김치나 조림 등의 식재료로 요긴하게 사용된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강한 자극에는 점차 무디어지는 법이다. 화려한 색상이나 진한 향수에는 시각이나 후각이 금세 둔감해진다. 너무 달거나 기름진 음식은 쉽게 물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소박하고 담백한 음식만이 오랫동안 그 맛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이나 무가 좀처럼 질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우리의 혀는 점차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고 있다. 다양한 조미료와 강렬한 향신료로 조리된 음식들은 우리의 미각을 둔감하게 하고 있다. 매울수록 맛이 좋은 양 불닭, 불라면 등이 인기를 끌고 있고, 여러 가지 양념으로 버무린 볶음요리나 찜 요리가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철학자 신일철은 사람의 미각은 달거나 맵고 짠 양념이 너무 강하면 음식의 제 맛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진한 양념으로 둔감해진 입맛으로는 음식의 감칠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의 맛도 행복감도 이와 같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화려하고 복잡한 물질문명의 세계에 살고 있다. 호화롭고 현란한 TV 프로그램, 고막이 떨어져 나갈 듯한 헤비메탈의 음악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점차 마비시키고 있다. 둔감해진 우리의 감각기관들은 이젠 어지간한 자극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더욱더 강렬한 자극에 탐닉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고요한 숲 속에서의 솔바람 소리나 바위틈 사이로 흐르는 샘물 소리가 천지자연의 음악이며, 한가롭게 바라보는 풀섶의 안개빛, 물속의 구름 그림자는 건곤(乾坤) 최상의 문장(文章)이라는 성현들의 가르침은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적극성을 띠지 않는 교류야말로 싫증을 불러 일으키거나 반목을 가져오지 않은 채 오래도록 만남을 지속할 수 있다. 한 눈에 줄리엣에 반한 로미오를 보고 로렌스 수도사가 충고한, 꿀이 너무 달다 보면 감미로움 자체가 싫증을 일으키고, 정작 맛을 보았을 땐 더이상 먹고 싶은 욕구가 없어지는 법이라는 말은 인간이나 음식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무는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느끼하지 않으면서 신선한 맛을 선사해 준다. 이는 강력하고 다양한 자극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미각적인 청량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무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조용히 군주를 돕는 충신 같은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 무가 가진 맛의 속성을 나타내는 대미필담은, 군주 주위에 간신이 많으면 충신들이 떠나버려 나라가 쇠퇴해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구맹주산(狗猛酒酸)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구맹주산의 본래의 의미는 사나운 개 때문에 술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어 술이 초맛이 되었다는 뜻이다.
점심 메뉴로 선택한 라면을 끓이기 전에 창고에서 무 하나를 꺼내 왔다. 이 메뉴의 첨가물로 들어가는 무는 불같이 매운 라면 국물 맛을 순화시키면서 시원한 맛을 낼 것이다. 오늘은 무의 담박함을 맛보면서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슴속의 잔잔한 감동을 느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