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입구에는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꿈의 껍질인 양, 스산한 초겨울 바람에 마당 위를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초여름부터 늦가을에 걸쳐 집 주위를 여러 가지 색깔로 수놓았던 팽나무는 이제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2018년이라는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려 한다.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듯이, 비둘기 한 마리가 팽나무 가지 위에서 석양의 해를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뭇잎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한다. 초여름, 나뭇가지에 갓 피어난 연녹 빛의 나뭇잎은 어린 아기처럼 풋풋하고 부드럽다. 한여름의 짙푸른 나뭇잎은 청소년처럼 밝고 활기차다. 울긋불긋한 빛깔로 물든 가을철의 나뭇잎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마는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이브닝드레스로 치장한 여인처럼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일생을 마친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면서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다.
마치 이 세상을 떠나기가 싫다는 듯이, 낙엽은 한꺼번에 지지 않고 하나씩 둘씩 장기간에 걸쳐 떨어진다. 한 순간이라도 더 나뭇가지에 붙어 생을 연장하고 싶은 것이 나뭇잎의 본성일지 모르나, 떨어진 낙엽을 수시로 쓸어내야 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본성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는 낙엽을 치우지 않는다. 이러한 나의 게으름을 반영하듯 올해에도 시골집 앞마당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이젠 떨어진 낙엽들을 처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예전에는 집 주변의 낙엽들을 긁어모아 땔감으로 쓰거나 외양간 바닥에 깔아 가축들의 밑자리로 사용해 왔다. 낙엽은 마지막 순간에는 자기 몸을 태우거나 깔개가 되어 이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고 떠나갔던 것이다.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글에서 낙엽을 태울 때 느끼는 시각적, 후각적 감각들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이 글이 발표된 1938년으로부터 80년이 지난 지금은 불행히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낙엽을 태운답시고 불을 피우면 무전기와 완장으로 무장한 산불감시요원이 순식간에 달려와 당장 불을 끄라고 호통을 친다. 이분들의 명령을 실행에 옮기지 않을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들은 경찰서에 고발하는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엄포도 서슴지 않는다. 그 옛날, 한 서정적인 문인의 눈에 비친 낙엽 타는 모습과 그의 코를 자극하던 향수는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조상들이 낙엽을 태우면서 느꼈던 한 줄기 감정마저도 피어날 수 없는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생물들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쓸어 모은 낙엽을 태울 수 없게 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찾아낸 대안이 그것들을 마대에 담아 창고에 보관했다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독히도 덥고 가물었던 지난여름, 텃밭의 작물에 생명수를 뿌리자마자 이 물이 증발해 버렸던 기억도 이러한 방법을 도출하는 데 한몫을 했다. 보관된 낙엽으로 내년엔 작물의 뿌리 주위를 덮어 잡초와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아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갈퀴와 대나무 빗자루로 앞마당에 쌓인 낙엽을 쓸어 모아 마대에 담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낙엽에 대한 감촉은 다소 거칠기는 하나, 그들로부터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불을 붙이지도 않았는데도 낙엽에서 온기를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낟가리같이 두두룩하게 쌓인 낙엽 속에 몸을 송두리째 파묻고 얼굴만을 빠끔히 내놓았다. 몸이 차차 푸근하여 온다(이효석, <산>, 1936)’라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낙엽을 꾹꾹 눌러 가면서 가득 채운 마대자루가 순식간에 5개나 만들어졌다. 이들을 창고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쌓았다. 내년 여름에는 이 낙엽들이 텃밭에 자라날 작물들의 햇볕 가리개가 되어 더위를 식혀주고 수분 증발을 막을 것이다. 마대 속에서는 얼마 전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또 다른 꿈의 껍질이 되어 훗날을 기약하며 겨우내 잠자고 있을 것이다.
낙엽을 태우는 대신 낙엽을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저명한 옛 소설가가 느꼈던 감성적인 분위기 대신, 이해타산적인 사고방식이 앞서는 현실이 다소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