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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호빵맨 Feb 10. 2019

손이 좋은 사람

"를리외르의 일은 모조리 손으로 하는 거란다.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모두 손으로 기억하거라.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 이세 히데코, 2006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현생 인류는 직립을 하면서 손의 자유를 얻었다. 몸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일에서 자유로워진 손은 비로소 창의적인 일을 도맡아 왔다. 인간의 생각과 의지의 대부분이 손을 통해 실현된다.  손은 나쁜 일과 어리숙한 일부터 대범하고 정교한 일까지 할 수 있다. 목을 졸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심폐소생술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손이다. 사랑의 매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선생님을 ‘손이 맵다’고 말하고, 별 것 아닌 재료로도 훌륭한 맛을 내는 음식에는 ‘손맛이 좋다’고 한다.  이세 히데코 작가가 말했던 ‘좋은 손’이란 어떤 손일까? 아마도 선량한 일에 쓰이는 완숙함을 갖춘 손을 말하는 것일 테다. 


 손이 좋은 사람들은 주변으로부터 타고난 재능이 부럽다거나 하는 찬탄을 말들을 듣는데, 손이 좋은 것이 과연 타고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집안에 돈이 많거나, 머리가 비상하거나, 우월한 신체를 가진 일들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지만, 손이 좋은 것은 타고난 일이 아니라, 반복 학습을 통한 노력의 결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는 손 끝의 예리한 감각,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고집을 부리지 않고 궤도를 수정하는 유연성,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대처능력. 손이 좋은 외과의사는 그 존재만으로 주변에 안정감을 준다.     


 우리 업계에서 손이 좋은 사람은 당연히 수술을 잘하는 사람이다. 의외로 수술을 잘 못하는 외과의사를 ‘곰손’, 잘하는 외과의사를 ‘금손’으로 부른다. 수술을 잘한다는 말은 ‘수술이 빠르다’, ‘기술이 현란하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뜻이 있다. 속도는 느려도 합병증 적고, 현란하지 않아도 한 번에 야무지게 끝낼 수 있는 내는 솜씨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위암 수술을 하시는 K 교수님은 어린 제자들에게 외과의사의 한 가지 덕목으로 ‘수수생춘(隨手生春)’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깊은 뜻을 풀자면 ‘내 손이 가는 곳을 따라 삶이 봄처럼 펼쳐진다’는 뜻이다. 만화 속에서, 악당을 싸워 물리치고 나면 악으로 뒤덮여 황폐했었던 공간이 푸르고 싱그러운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마법 같은 풍경이 연상된다. 암 수술을 마친 후의 환자의 몸도 그러할 것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는 ‘곰손’ 외과의사를 남편으로 둔 부인이다. 닥터 보바리는 착하기만 했지, 예술적인 취향이나 성품이 따분한 남자였다. 시골에 사는 외과의사로 그의 유일한 믿을 구석이었던 수술 실력마저 엉망으로 밝혀진다. 손이 가는 곳마다 출혈이 생기는 ‘수수생피’의 현현이었다. 명성을 얻어 화려한 도시로 진출하려는 엠마의 계획은  결국 산산조각 나게 된다. 남편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으로 모든 것이 흔들려버린 엠마는 다른 사랑을 찾고, 사치를 하고, 사채를 쓰게 되고 이야기는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엠마가 ‘곰손’ 남편에게 느꼈던 혐오감은 대략 다음과 같다.

 

"고개를 돌리자 샤를이 거기 있었다. 그는 모자를 눈썹까지 푹 눌러쓴 데다 두꺼운 두 입술을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에 한층 더 바보스럽게 보였다. 게다가 그의 잔등, 그 침착한 잔등은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프록코트에 덮인 그 잔등 위에 그의 모든 진부함이 온통 다 진열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런 남편을 보며 치미는 짜증 속에서 일종의 잔인한 쾌감을 맛보았다."


수술을 못하는 외과의사라는 존재는 저토록 밉고 무용한 것이다. 두 손을 모두 사용하는 일은 모두 진심으로 하는 일이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하지만 진심만으로는 부족한 일,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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