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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호빵맨 Aug 08. 2018

1타 선생님


 
 ‘1타 선생님’은 요즘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상종가를 치는 단과의 강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1진'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 '1타 쌍피'에서 나왔다는 설, 그리고 '1번 타자'의 준말이라는 설 등이 있다. 어원에 상관없이 일단 발음을 해보면 그 의미가 몸으로 와 닿는다. 학원가에서 이름을 날리는 강사들은 인터넷 강의-줄여서 인강- 사이트로 영입이 되는데, 잘 나가시는 분들의 수입은 많게는 수백억까지도 된다고 한다. 물론 개인기 하나로 가능하지는 않다. 운전기사, 교재연구자, 유머연구자, 강의모니터 요원 등 철저한 역할 분담이 된 팀으로 움직이는 벤쳐 기업이다.
 
 학창시절, 유명한 학원 강사님께 수강신청을 하려고 긴 줄을 섰던 광경이 떠오른다. 천성적으로 이런데 시간을 쓰지 않는 학생들이 있었기에, 수강신청이 개강 이후에도 가능했던 2타, 3타 선생님들도 먹고 살 수가 있는 낭만적인 시대였다. 요즘은 정원의 제한이 없는 인터넷 강의가 발달해서 누구나 다 돈만 있으면, 1타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가 있다. 1타가 뜨면 뜰수록 2타, 3타 선생님들은 상대적으로 곤궁해지고, 모두가 다 1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아이돌 가수 데뷔하듯이 합숙하면서 연습생 시절을 거치는 학원가 선생님들도 있다고 한다.
   
 1타 선생님에게 수강신청을 못했는지 대학 입시에 낙방을 했었다. 한강 이북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J 학원(D학원 출신들이 한강이남에서 최고라는 뜻 모를 자부심이 있기에 배려하는 표현임)에 등록을 하러 갔을 때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재수 학원에 들어가려고 또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 여기서 또 떨어지면 무슨 망신인가....'. 그런 모욕적인 시험을 보고 들어간 J학원을 그래서 J 대학이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콩나물 시루 같은 반을 배정받고 며칠 강의를 들어보니, 대한민국에 강의 잘하는 선생님들은 정말 다 모여있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과학을 못했는데, 그 중에서 화학은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J 선생님의 화학 강의를 듣고 나니, 내가 못나서 공부를 못했던 게 아니고, 임자를 아직 못 만나서 공부를 못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J 선생님은 내 인생에게 거의 처음 만나본 충청도 사람이다. 열거하는 말이 충청도 사투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옴팡(죽도록, 많이)', '이게가요(이것이요)' 등의 재미난 어휘와 몇 가지 비속어들로 다채로운 유행어를 가지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려고 하면 옆 반의 학생들이 콩나물 시루의 통로에 까지 책상과 의자를 끌고 들어와서 선생님도 책상을 딛고 어렵게 입장할 정도로 초만원이었다. 무협영화에서 보았던 ‘허공답보’라는 초식의 재림인 듯, 입장하시는 모습도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대가의 강의는 일단 시사토크부터 시작한다. YS가 어떻고, DJ가 어떻고 등 대부분 정치 이야기여서, 그 나이 때의 재수생들은 아무 관심도 없는 토픽을 몇 일간 반복해가면서 서사구조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 위에 매번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서 흥미를 더해갔다. 정작 화학수업은 40분부터 시작해서 쉬는 시간 5분정도 써서 15분 정도였다. 그 수업은 여태껏 어느 교재에도 없고, 어느 모의고사 문제에도 없는 내용들이었다. 음란한 어휘 구성으로 조합된 원소주기율표 암기법에서부터 본고사 입시 문제로 나오고야 말 법한 심오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시간에 대학의 교양 수업 중 '일반화학'을 다 배운 셈이었다. 대학에 가서는 다시 하나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지만 말이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 분이 밝힌 그 분의 내력은 대충 이렇다. S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뜻한 바 있어 도미를 결행한 후 CalTech(당시에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 학교)에서 박사를 하셨고, 그 후 귀국하여 모교의 교수를 지내시다가, 가세가 기울어서 수억(정확히 표현은 안하셨으나, 미뤄 짐작임)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J학원에 왔다고 했다. 이렇게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 계기에 돈만 작용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J 학원 출신의 인재들로 채우겠다는 원장님의 뜨거운 애국심과 교육자 정신에 깊은 감화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작년 기출 문제를 풀어줄 때 어떤 문제가 하도 거지같아서 문제 낸 교수 놈이 누구냐고 자기 후배 교수에게 물었더니
"형님, 그거 제가 낸 문제인데 그걸 지적하신 분은 형님이 처음이십니다. 조용히 덮어주세요..."라는 양심선언까지 받았었노라고 하셨다. 출제자의 머리 꼭대기에 계신 분에게 산상수훈을 받을 때 밀려왔던 감동이란..   
 
교실 뒷자리부터 채워주시던 삼수생 형들이 J 선생님의 자기자랑 시간에 가끔 잠에서 깨서 가끔 한마디씩 했다.
"저 선생님 작년에는 MIT 출신이라더니, 올해는 칼텍이네..."    
"그러게.. 재작년에는 칼텍이라고 했다던데, 2년에 한번씩 학교가 바뀌네.."
"몇 년 전에 S대 화학과에 들어간 친구가, 동문 명부와 교수연명부를 봐도 저런 이름이 없다던데.."
 
선생님의 깊은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의 현세적 가치로 판단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니...
 
나는 절박했고 무조건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나를 나락에서 구원해다고 믿는다. 내 인생의 1타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은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었던 시절이었다.
 
 폐쇄성 결장암으로 응급수술을 했던 초로의 환자가 있었다. 수술 다음날에도 개복수술을 한 여느 환자처럼 침대를 붙잡고 누워서 인상만 쓰고 있었다. 침대옆 보호자 의자에는 부인이 앉아 계셨는데, 근심이 어린 표정이었다. 몇마디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환자의 이름이 익숙했다. 얼굴을 다시보니 EBS 강사로 유명했던 분인 것처럼 보였다. 왜 응급실에서는 몰라봤을까?
 
 “혹시 E 선생님 아니세요? 지구과학을 가르치셨던..”    
 
누워만 있던 환자는 벌떡 일어나서, 자기를 알아보는냐고 되묻고는 만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슬쩍 부인을 보는 눈빛이 ‘거봐,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표정이었다. E 선생님의 지구과학 강의는 지구 밖에서 지구와 달과 태양계를 100년 정도 관찰한 수준의 통찰을 주었다. 2차원적인 글과 그림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현상을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다. J 학원에 가서도 지구과학은 선생님 강의가 담긴 EBS 교재로만 공부했던 것 같다. E 선생님은 내가 여태 수술한 분 중 유일하게 TV에서 뵙던 분이다. 기왕 아는 체 한 회진, 한 마디를 더 해드리고 인사를 드렸다.

“제가 선생님 덕으로 의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항암치료도 무사히 마치고 재발 소견 없이 건강하게 병원에 규칙적으로 나오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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