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훈련소에 들어가면서, 나는 배운 것이 무엇이었을까. 군복 바짓단을 멋지게 접는 방법? 총기를 제대로 닦는 방법? 아니면 조교들 몰래 밤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방법? 이곳에서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라곤, 파시즘에 대한 교육뿐이었다. 국가에 대한 무한한 충성이라 교육하지만,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조직에 대한 충성, 즉 군대에 대하여 까라면 까라는 정신을 제대로 각인시키는 것이다. 왜 나는 이곳에서 나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못하고, 피엑스 이용도 안 되고, 담배도 못 태우는 이런 곳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감옥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죄라면 몸 건강히 태어난 죄밖에 없다. ‘윗사람들에 대한 복종을 하면 몸 안 다치고 멀쩡히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은 끝없는 애국심을 심어주고, 사병들은 훈련소를 나갈 때 누구보다 애국자이며 북을 증오하고 상관에 대한 완전한 충성심을 가진다. 물론 마음속에 혁명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 집단에나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훈련소는 하나의 완화제를 두고 있다.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감사. 그것을 가르친다. 오늘 누가 초코파이 줘서 감사합니다. 낮에 훈련 때 수류탄 훈련을 빼 주신 교관님께 감사합니다. 따위의 말도 안 되는 감사를 억지로 적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점차 혁명가들의 불씨는 꺼지기 마련이다. 작은 일에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라며, 감사를 1000개 채우면 휴가를 보내준다고 한다. 아주 머리를 잘 쓴 것이다. 군인들은 하루라도 휴가를 더 나가기 위해 작은 것에 대한 경외와 숭배를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감사를 적어가면서 작은 일에 대한 감사를 느껴간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소확행과 비슷한 느낌일까. 휴가라는 초콜릿으로 군인을 꼬드겨 변화를 막는다. 참 다시 말하지만 머리를 잘 썼다. 나는 그런 정신교육이 있는 날이면 항상 뒷자리에 앉아 조그만 노트에 칼럼을 쓰곤 했다. 칼럼의 주제는 대부분 ‘국방부의 감사 프레임에 대한 고찰.’이었다. 오랜만에 노트를 뒤져보자. 앞장 10페이지 정도는 우울함과 허무를 나타내는 시가 적혀있다. 그다음에 나온다. ‘우리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머한민국 육방부는 오늘도 나에게 감사하라 이른다. 하지만 나는 감사할 수 없다. 왜냐. 감사할 것이 하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를 가두어놓았다. 나의 기본적 권리와 인권을 밟으며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물도 먹으라고 하고 있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나의 사명감은 그 누구보다 확고하며, 조국에 대한 나의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국방부에 대한 나의 반항심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나는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식민지 지배와도 같은 상황이다. 다 뺏어가 놓고는 ‘자. 내가 너를 이렇게 성장시켜주고. 밥도 주고. 옷도 주고 다 했다. 우리에게 감사해라. 우리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니까.’ 이것이야말로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우리는 예로부터 맹자의 逆成革命(역성혁명) 사상을 중요시해왔다. 상관이 잘못된 일을 하면 항상 올바른 말을 해 주고, 그렇지 못하면 새로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임란 때 일어났던 봉기도, 동학 농민운동도. 모두 이러한 사상을 기반으로 일어난 국민의 운동이다. 좀 넓게 보면 의병운동도, 독립운동도 이러한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대한민국 광복군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우리 국군은 이런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 행동에 비해 현재 참으로 부끄러운 행태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팽배한 상명하복 문화. 잘못되면 사고를 막느라 사병들의 입을 막는데 급급한 문화. 쓸데없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붙이게 만들어 이러한 문화를 바로잡지 못하게 만드는 악습. 그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뒤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마음의 편지’ 문화가 그러하다. 변화를 위해 권익이란 종을 난타하는 사수는 저격을 당하고 탑에서 떨어진다. 이상한 말을 덧붙여 그들은 관심사병이 되고 만다. 집단적 전체주의에서 파생된, 파시즘과 다를 바 없는 문화. 국방부는 이를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 아아. 한스럽다. 이를 글로만 쓰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 펜 뚜껑을 덮는다.’ 뭔가 있어 보이려고 멋지다고 생각한 구절은 다 가져다가 붙였다. 어찌 됐건 아주 굴욕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점심시간, 밥도 맘대로 못 먹고 집합을 하고 있었다. 조교가 나를 앞으로 불러 세웠다. 국방부의 앞잡이 같은 놈. 세뇌당한 놈. 망할 자식이 나를 왜 부르지. 엄청난 적의와 함께 나는 훈련받는 사병들 앞에 섰다. “오늘 몽상이가 필기 열심히 하고 듣더라고. 5감사 몽상이가 하나 해 보자.” 내 몸에 존재하는 혁명의 세포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활성화된 산소를 타고 올라가 뇌를 마구 건드렸다. 새로운 혁명을 완수하자. 잡혀가자. 내 사상은 잘못된 일이 없다. 군인 인권센터에 재소 해서 같이 싸우는 거야. 길고 긴 싸움 중에 너는 유명해지고 분명히 빠르게 바뀌는 사회상에 결국 승리할 거야. 나를 바라보는, 뇌가 이미 국방부에 잠식당한 저 불행한 청춘들의 눈동자가 해맑게 빛나고 있었다. 아아. 저들은 내게 동참할 것인가. 그래 나는 그때 갑신정변이 생각났다. 위로부터의 개혁, 결국 민중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실패로 끝나버린 사건. 나는 저들의 동의를 구할 자신이 없었다. 그럴 땐 어떻게 하는가.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좋다. “우선 저를 군대에 올 수 있도록 신체 건강하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인생 최대의 굴욕적인 날이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불쌍한 청춘들은 이를 보이며 웃었고 혁명의 기회는 날아가 버렸다.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