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생각하지 마세요, 시키는 거나 하세요.

by Cruel Ella

10년 만에 재취업이었다.


면접을 볼 때, 풀 타임은 힘들다고 못을 박아둔 터였다. 이미 사람은 뽑았지만 얼굴만 보자고 연락이 와서 나도 내 조건을 서슴없이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아쉽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10년간 내 손으로 돌보았던 아이들과 단칼에 떨어질 수 없었다. 아직 3호는 너무 어렸다.


같이 일 해보자고 연락을 받은 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이날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렇게 될 거였다. 그렇게 흥분된 가슴을 안고 합격 소식을 가족에게 전했다.


순리대로 흘러가 듯, 나는 그저 몸을 맡기고 즐기면 되는 거였다. 초반엔 공부할 양이 어마어마했어도 금세 적응했다. 역시 '난 죽지 않았어' 스스로 기특해했다.


몇 번의 사고를 쳤지만 그때마다 잘 넘겼다. 아줌마의 뻔뻔함은 연구실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였다. 기죽어 다니지 않고, 모르겠다 싶으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물었다. 나는 막내로서 그저 다른 선생님들의 서포트만 잘하면 될 일이었다.




1년이 지나고 있다.

나름 신입은 아닌데 아직도 신입이다.


단독으로 임상연구 과제를 맡았다. 그 연구에 관한 모든 과정과 약간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결정권은 PI가 갖고 있어도 중간다리 역할은 톡톡히 해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PI와의 소통이 어렵다.

한 번씩 떠보는 PI 말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갈피를 잡지 못한다. 도대체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도 못하겠다. 차라리 정확하게 한 문장으로 오더를 내렸으면 좋겠다. 그게 일처리 하기는 제일 깔끔하다. 그러나 PI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끝까지 내 능력을 시험해 본다.


"그 사장 오면 내 연구실로 데리고 와, 얘기 좀 해보자고. 그때 결제하고 거래 그만해."


분명 그랬었다. 그게 9시다.


"내가 이렇게까지 챙겨야 하나? 좀 알아서 조율해봐."


@.@?? 이건 12시.


'그래서 물건을 빼라는거야 말라는거야~?'




난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소위 융통성이 조금 부족하다. 융통성이 부족한 사람은 연구자로서 유리하다.

실험 데이터 만으로 결론을 내야 하는데, 온갖 융통성을 갖다 붙이면 실험은 성공하지 못한다. 예외 사항을 허용하기까지 까다로워야 하고, 원치 않던 데이터 결과여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자꾸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비교가 된다. 전에 일했던 Boss는 그렇지 않았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셨고, 분명한 의중을 보이셨다. 서로 오해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았던 거다.


이번 PI는 다르다.

일을 하기도 전에 기가 빨린다. 9시에 오더를 내리셨음에도 12시에는 말이 바뀐다. 익숙해지지 않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연구실 다른 선생님들도 어렵단다. 그분들은 그냥 그렇게 버티고 계신 거였다.




"생각하지 마, 그냥 그때그때 시키는 것만 하면 돼."


남편의 조언이다.


"의외네. 그런 쪽으로는 눈치가 빠를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의 빈정거림도 있다.


"더 잘하려고 하지 마. 돈 받는 만큼만 하면 되지"


맞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의욕만 앞서 있다.


"기업에선 흔히 있는 일이야. 당신은 연구실에서만 일해봤으니 알리가 있나~"


할 말이 없다.


"차츰차츰 배우면서 크는 거지, 허허허~"


왠지 모르게 약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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