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르바이트생?
어김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이다. 고양이 '고고'가 꼬리를 세운 채 내게 다가와서 비비댄다. 어느 땐 이것마저 귀찮을 때가 있다. 인생에 기대감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저 숨을 쉬고 살아내기 바쁜 직장인이다. 나는 지겹다는 듯 거칠게 구두를 신고 문을 나선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워도 누릴 마음의 재미가 없다. 요즘 사는 게 부쩍 무료하다. 37살의 여자 인생이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간다는 게 서글플 뿐이다. 점점 늘어나는 뱃살도 싫고, 푸석해져 가는 머릿결도 짜증이 난다. 남들이 예쁘다고 했던 입술선도 이제 마스크에 가려져 매력적이지도 않은 눈만 나와있다. 출근하면 분명 박 대리가 한소리 할 거다. 오늘도 노메이크업이냐고...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다.
"어이, 자연인 오셨네~ 세상 살기 참~편해, 그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한마디 해야 직성이 풀리듯 오늘도 박 대리는 날 향해 야유를 보낸다. 노처녀의 카리스마는 남들에게만 장착되어 있나 보다. 나에게는 약간의 쭈굴함과 바보스러움만 남았다. 직장 내 성희롱은 다른 나라 얘기처럼 우리 회사에는 아직도 옛날 감성이 자리한다.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고 누구도 나설 수 없는 압박이 있다. 이것이 문화이고 전통처럼 잘못 뿌리내려졌다. 다행히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가 가능해졌기 망정이지 그 전에는 더 심했었다. 회식을 안 하니 살 것 같은 게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회사는 여직원 2명, 그리고 남직원 3명으로 꾸려진 작은 유통회사다. 물류창고를 옆에 두고 있어서 사무실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아도, 모두들 이 회사에 오래 근무한 사람들이다. 오래 되면 섞어 곪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게 문제가 된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개뿔, 그건 사람을 만만히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류창고 쪽은 몸을 쓰는 일이 많다 보니 아르바이트생들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바뀌지만, 분위기는 꽤 괜찮다. 거기에는 유 반장님 덕이 크다.
내 책상에 뿌려진 영수증을 보니 아침부터 신경질이 난다. 화목함을 자랑한다던 이 회사에는 도대체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없다. 날짜별로는 아니더라도 차곡차곡 묶어 주면 어디 덧나냐! 주섬주섬 주워 집는 내 꼴이 우습지만 난 여기서 큰 소리를 낼 위치가 못된다. 작은 허드레 일이나 하는 주제에 영수증 갑질은 꿈도 못 꾼다.
"언니, 물류창고에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 봤어요? 완전 대박!"
나머지 여직원 1명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애기다. 풋풋한 에너지와 초롱한 눈망울이 매력적이지만 입만 열면 기대감이 무너지는 그런 스타일이다. 내가 17살이나 많다 보니 어려울 만도 한데 얘한텐 어려운 어른이란 없어 보인다. 아니면 내가 이 아이 눈에 어른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아, 나이 많으신 그분?"
며칠 전 새로 아르바이트생이 왔다는데 이슈가 된 건 나이가 많아서이다. 보통 아르바이트생은 나이가 많아봐야 서른을 갓 넘은 수준인데 요번에 새로왔다던 아르바이트생은 마흔둘인 데다가 미혼이고 너무 잘생겼다는 점이 이 아이의 관심을 끈 이유가 된다.
"전 출근 때마다 일부러 먼저 와서 기다려요, 그 오빠 얼굴 보려고~~"
오빠랜다. 띠 동갑을 넘어 22살 차이다. 이건 삼촌도 안되고 아저씨 혹은 아버지 수준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참 천진난만하게 오빠 소리가 절로 입에 붙는다. 이런 재능은 타고나는 것 같다.
"잘생겼다더라."
무심한 척 말했지만 사실 이 남자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나도 모르게 자꾸 쳐다보게 되는 게 잘생겨서인지, 아는 사람인가 싶어 그런지 모르겠다. 낯이 익은데 마스크를 꼈으니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난 내가 노처녀인 게 다행인가 싶다가도 부끄러워 더 이상 생각을 진행시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