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하나요 #2

뒷모습

by Cruel Ella

가을이라고 새벽 바람이 제법 차다.


아는 형이 소개해준 물류창고는 생각보다 분위기가 괜찮아서 열흘 넘게 출근 중이다. 한 회사에 오래 버티기 힘든 스타일이라 형은 소개해주길 꺼려했지만, 난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나에게 남은 거라고는 반지하방 하나다. 나는 겨울에 생존할 돈이 필요하다.


형에게 애원해서 겨우 소개받은 곳은 지하철로 아홉 정거장 정도 거리에 있는 물류창고 알바 자리였다. 차비와 밥값을 빼면 내 손에 쥐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이 괜찮은 이유는 물류창고의 유 반장님 때문이다. 물류창고와 사무실 사이에서 윤활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바람에 사무실과 물류창고 쪽 사람들끼리 사이가 나쁘지 않고, 직원들끼리의 소통도 제법 좋은 편이다. 특히 사무실에 있는 어린 여직원은 기분 나쁠 수 있는 잔심부름도 기꺼이 해준다. 남자들 사이에선 여러모로 인기가 좋다.


오늘도 여전히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한다.


그 어린 여직원은 미리 나와있다. 아무래도 며칠째 이른 아침부터 나와있는 걸 보니 누굴 기다리고 있는 듯해 보인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한겨울에도 저리 나와있을까 싶은 생각에 다시 한번 뒤돌아본다.






창고에 쌓인 물건을 한참 동안 정리했는데도 반도 끝내지 못했다. 오늘은 늦게 끝날 것 같다. 아르바이트생들은 끼리끼리 앉아 물 한 모금 들이킨다. 가을이라고 해도 낮의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면 일하는 입장에서는 꽤 덥다. 오늘도 어김없이 땀을 한 바가지 흘린다. 아르바이트생들 중에선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 젊은 애들 사이에서 일하려니 꾀도 못 내겠고, 힘들다고 유난도 못 피우겠다. 일함에 있어서는 형에게 제대로 낚인 것 같다.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쉬는 시간도 많이 주고, 막무가내로 부려먹진 않는다. 다만 일당이 조금 짠 편이긴 한데 나에게는 길게 일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 여기면 만족한다.


사무실에는 어린 여직원 말고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여직원이 한 명 더 있다. 점심시간이면 창고를 힐끔 보고는 이내 사라진다. 여기서 누군가 찾고 있는 듯해 보일 정도로 관심 있게 둘러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도망치는데, 도대체 뭐하는 여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뛰는 모습도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뒷모습이지만 지금 나는 여러 생각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다. 나이 마흔둘에 이런 일은 체력적으로도 버겁고, 심리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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