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하나요 #3

잔디밭

by Cruel Ella

내 나이 21살 때.


친하게 지냈던 사촌 언니 대학 졸업식에 초대를 받았다. 사촌 언니가 다녔던 대학은 예쁜 캠퍼스로도 유명하고, 건축학과로 명성 있는 대학이라 한 번쯤은 가볼법한 기회였다. 사촌 언니는 인싸는 아닌 듯 친구들보다 함께 온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고, 대학 친구라고 우리에게 소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졸업식이 진행 중인데 난 강당을 빠져나와 계단에 앉았다. 어른들은 졸업식 참여 중이고, 난 고등학교 졸업식이나 대학 졸업식이나 다 똑같다고 느끼며 지루함을 피해 잠시 나온 거였다. 사촌 언니는 여름 학기를 마치고 졸업하는 거라 대학 전체가 졸업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문학과 작은 강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지는 졸업식은 분위기가 영 살지 않는다. 그게 더 재미없었던 이유였을 지도 모르겠다. 혼자 걷다 보니 캠퍼스 한가운데에는 널따란 잔디밭에 와 있다. 주변으로 삼삼 오오 모여 앉아 술도 마시고, 커플들의 데이트 장면이나 기타 잡고 앉아 노래 부르며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자유함의 상징인 것처럼 보인다. 난 그런 게 부러웠다.


난 대학을 가지 않았다. 못 갔다고 하는 편이 더 나았다. 솔직히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고,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이 바닥을 깔았다. 차라리 실업고등학교를 갔었으면 더 나았겠다 하며 후회한 적도 있지만 난 모험가나 개척가다운 면모는 전혀 볼 수 없는 아이였다. 그냥 그 자리에 두면 그 자리에서 살아남기만 할 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죽은 선인장 같은 아이였던 것이다. 그냥 그렇게 일반고를 아무 의미 없이 졸업했다.






캠퍼스 잔디밭.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살며시 말을 건넨다.


"혼자 뭐해요? 여기 학생 같아 보이진 않는데.."


돌아봤을 때 처음 본 그의 얼굴에선 빛이 났다. 왜 이런 멋진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을까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낯선 남자인데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말을 걸어줘서 고마울 정도다.


"아, 사촌 언니 졸업식이요. 지루해서 나와 있었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 채 나는 그에게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하고 대답을 한다.


"지루하면 나랑 같이 캠퍼스 구경할래요?"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그래야만 하는 운명 같은 느낌이었다. 설레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이전 02화나를 기억하나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