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길을 뒤돌아서는 법

윤종신의 이방인 행보를 바라보며

by 꾸깃글


감성 젖는 밤이면, 과거의 어떤 일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날이면 내 플레이리스트에 윤종신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나 정준일 보컬의 ‘말꼬리’의 끝을 붙잡는 이별 이야기나, 덤덤하게 지나가는 삶을 읊는 ‘나이’라든지, 곽진언 김필의 보이스와 함께 모든 이의 하루를 응원해주는 ‘지친 하루’ 등. 추천해준다면 진짜 최소 열 곡은 넘는 그의 노래. 어설프게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 작사가를 가끔 꿈꾸면 윤종신처럼 부끄러운 솔직함을 풀어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요즘 잘 TV 및 방송 콘텐츠를 시청하지 않는 내가 오랜만에 리모컨을 잡고 채널을 돌리다 라디오스타 ‘윤따의 밤’ 편에 화면을 멈추게 되었다. 윤종신이 마지막을 고하는 특집이었다.

그 에피소드의 골자는 윤종신이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편안하고 안락한 곳을 떠나 14개월 동안 이방인으로서 살고 싶다는 거였다. 가족도 두고, 유럽 등으로 카메라 담당과 단 둘이 떠나 월간 윤종신 등의 작업을 하려는 계획.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웃을 수 있도록 짜인 에피소드들과 약간의 감동으로 버무려진 편이었지만, 나는 윤종신이 마지막으로 라스 무대에서 부른 노래 ‘늦바람’ 가사에 말로 표현하기 조금 어려운 무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연예인 걱정하는 게 가장 쓸데없는 거라지만 연예인이기 이전에, (라스에서 유세윤이 말한 것처럼) 내 지금의 삶을 형성시켜준 여러 노래를 만들어준 대단한 사람이라 더 그런 건지. “대단한 도전 하네”라고 넘기기보다 울컥함에 가까운 감정이입이 더 컸다. 그와 아무런 친분도 있지 않고, 그저 미디어를 통해서만 만나는 일종의 팬과 연예인의 관계일 뿐이지만 내가 리스펙 하는 연예인 중에 TOP5에 드는 것 같다. 매달 월간 윤종신을 내는 예술인으로서의 꾸준한 노력도 존경스럽지만, 이번처럼 절대 멈추지 않는 도전과 열정을 보이는 면모가 참 공감되었다. 편안한 곳 정말 좋지만, 편안한 일 어느 정도로 만족할 수 있지만, 마음속 깊이 충족되지 않는 그 어떤 열정을 향해서 발전하려는 그 마음. 사랑하는 가족들을 잠시 뒤로하고 떠나는 무거운 발걸음. 내가 굳이 편하고 안락한 고향을 뒤로 하고 서울로 상경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과 약간은 비슷한 마음일까? 따뜻한 엄마 밥이 그리우면서도 혼자서 삶을 살아내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과 말이다.

가끔 지인들에게 습관처럼 말하는 게 있다. 이 불안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만약 내가 아이를 놓지 않는다면, 10개월 정도, 더 길다면 더 좋고, 세계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말. 윤종신처럼 돈과 시간을 투자한 온전한 이방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약간이라도 낯선 것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고 다시 떠나며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윤종신의 행보에서 느껴지는 내 감정은 부러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든 다 음악적으로, 예술적으로 승화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심어줬으면 좋겠다.

그와 함께 자라나는 음악을 들으며 한 뼘 정도 마음이 자라날 수 있도록.

이방인으로 떠난 그가 값진 만족을 품고 돌아와 또 다른 이방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윤종신/늦바람
https://www.youtube.com/watch?v=774kcORmzn0


너무 오래 머문 것일까
여긴 정말 머물 곳일까
여기서 보고 느낀 그 모든 게
내게 최선이었을까

너무 늦었다고 하겠지
무책임한 늦바람이라
하지만 너무 많은 남은 날이
아찔 해오는 걸

조금 더 찾겠어
내 삶의 한 가운덴 것 같아
깨달은 게 많아 뒤로 빠지기엔

좀 더 꿈꾸겠어
생각보다 훨씬 느낄 게 많아
바람 맨 앞에서
숨지 말아야 해
겪는 게 이득이래 어차피 다가올 날
멍하니 만나긴 싫어

나 조금 더 멋있어질래
남들 얘기 속 그거 말고
뭐가 더 내 거 인지
내 마음 인지 이젠 내가 보여

조금 더 찾겠어
내 삶의 한 가운덴 것 같아
깨달은 게 많아
뒤로 빠지기엔

좀 더 꿈꾸겠어
생각보다 훨씬 해 볼 게 많아
바람 맨 앞에서
숨지 말아야 해
겪는 게 이득이래

한동안 힘들 거야
세상 속도 나보다 빠르니까
결국은 도착하겠지
지쳐 걸 터 앉아
그 나무에 기대는 날

조금 더 걷겠어
상상만 했던 그 길 어떨지
겪지 않기에는
몹쓸 그 호기심들
아무 말 않겠어
내 이야긴 나 혼자 간직할게
각자의 길인 걸
다 다른 나그네인걸
만나면 토닥여줘 우연한 그늘에서
내 길을 우기지 말고

#이방인 #윤종신 #라디오스타 #월간윤종신 #늦바람 #에세이

매거진의 이전글첫사랑, 설레는 사람, 과거의 누군가가 떠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