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방구석 미술관>을 읽고
고등학교 시절 독후감 숙제 중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고 매 에피소드마다 구구절절 코멘트를 달았던 적 있다. 이런 옴니버스 식의 구성을 마주하게 되면 왜인지 그때가 떠오른다. 한 권의 책으로 여러 권을 읽어내는 것 같았다면, 이번에는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미술관을 한 번씩 들락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미술, 미술작품, 화가, 예술 사조 문외한들에게 쉬운 구어체로 미술관을 요리조리 안내해주는 친절한 가이드 같은 책이었다. 한 번씩은 이름을 들어봤던 작가들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전시를 평소에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가볍게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누군가는 자신의 느낀 바를 글로 누군가는 또 음악으로 표현하듯이 그림이라는 것은 하나의 예술 표현이다. 화가란 인간으로서 지닌 창의력, 상상력, 관찰력, 표현력 등 많은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부러운 존재 같다. 똑같은 인간으로서 나는 남들이 다하는 말이나 글도 정리해서 구성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작가 저마다의 사연과 비극, 화가(뒤샹 때문에 화가라는 단어로만 한정짓기에는 또 어렵겠다)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다르지만 그림으로서 길이길이 이 세상에 남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럽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는 첫사랑과도 같은 모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혼자 넋 놓고 바라보았던 모네의 수련이 기억났다. 당시 유럽여행 중에 미술의 ㅁ도 모르고 온갖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며 내 무식을 경험했는데, 수련 작품만큼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그냥 마음이 한없이 푸근해지고 평화로웠다. 그런 모네의 다른 작품도 구경하며 그가 했던 말, ‘장님이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 비단 장님뿐만 아니라 눈 뜬 사람들도 다시금 더 큰 비전을 만들어주는 작가라고 자부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왜일까 친숙한 클림트의 초기작들이 기억난다. 클림트의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 예전의 모범생 모습. 그리고 그와 대조되는 대학 천장화들 철학, 법학, 의학. 소실되어 컬러가 아니라고 하지만 오히려 어두운 색으로 표현된 클림트의 반항과 클림트의 목소리가 두드러져 보인다. 최근 제주도 빛의 벙커에서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사운드로 클림트 작품을 재구성한 것을 구경했는데 마치 뮤지컬 쇼 같았다. 인물, 색채, 표현이 한 조각조각 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 당시 보수적이고 권력세습적인 미술계에 아주 큰 짱돌을 던져 예술을 보여준 클림트. 특히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의 눈빛이 아른아른거려 그나 그의 작품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
이렇게 예술가들과 작품을 보다 보니 그 당시 예술가들이 한 시대 모였던 파리에 시간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들었다. 어쩌면 그러한 바람으로 나온 것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인 것 같기도 하다. 피카소, 피츠제럴드, 헤밍웨이를 만나서 ‘2010~20년은 아직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다’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