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깃글 Jun 20. 2021

빨간 맛

쏘야에는 케첩이 필수라지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 중 몇 가지

꾸역꾸역 가득 찬 냉장고 속 딸내미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들이 한가득하다. 생일이라는 모멘텀을 놓칠 리가 없는 엄마에게는 더군다나 더 분주했을 장보기.


새우 전복 삼겹살 조기 미역국용 소고기 버섯 파프리카 브로콜리

냉장고 안이 아니더라도

견과류 감자 양파 초당옥수수 토마토 참외

식단 관리라는 단어가 이 부모의 사랑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지 깨달았다. 그 와중에도 현실적으로 며칠의 치팅으로 치부한 나의 본가 방문의 온도 차는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든다고 하더라도 데워질 수 없을 것이다.


평소에도 과하기로 유명한 엄마의 큰 손은 딸 방문에 더 발휘되었다. 베란다 가스레인지와 부엌의 인덕션이 동시에 돌아가고, 엄마는 만화영화 속 조잡한 팔 네다섯 개의 로봇만큼 분주했고 로봇보다 높은 효율성을 보이면서, 도와줄까 는 내 말에 인간 따위가 끼어들 필요 없는 일이라는 듯이 거절하곤 하셨다.

엄마의 팔 중의 하나가 브로콜리-파프리카-버섯-소시지-양파 볶음을 하고 있었고, 잠시 다른 요리에 집중할 때 그 볶아지는 야채의 향에 행복했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 주는 다이어터로서의 심리적 위안의 향기. 그리고 로봇손의 속도를 믿고 티브이에 집중했던 내가 다시 야채볶음으로 다가오니 시큼한 향이 났다.

케첩이었다.

뇌를 거치기도 전에 빨간 향에 한번, 빨간색에 한번 자극을 받은 나의 감각기관은 언어로도 뻗어 나갔다.


아 엄마 나 케첩 안 좋아하는데 왜 넣었냐고!!

계란말이에도 절대 케첩 안 뿌리는데 아..

아 맞다 간이 심심해서 케첩을 넣었는데 네가 안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엄마가 미안하다


굳이

어쩌면 반드시 숨겨야 했던 것이 아닐까 했던 나의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고,

그 이후 오분, 십분 후 엄마의 얼굴은 끓는 케첩보다 더 뭉그러졌다.

알았다.

그 케첩은 내가 지금까지 ‘직접 뿌릴지 말지 결정해도 되는’ 케첩들과는 다른 소스라는 것을.

막상 먹어보니 맛있었고, 맛있다고 말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더 나아지지 않는 엄마의 얼굴은 케첩이 식도로 넘어가고도 남아있는 그 껄끄럽고 시큼한 느낌과도 같았다.


나는 정말 그 무엇이 중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소중하고 정성스러운 그 빨간 맛을

접어버리고, 무너뜨리고, 삼킨 것일까

식사 시간 내내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도 엄마의 기억 속에는

나의 젓가락질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웅아 너에게 주어진 삶이 조금만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