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깃글 Jul 30. 2023

한 여름의 친절

1


주황빛이 들어왔니?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친구는 마치 홍콩영화 속 조금 더러운 창문으로 비치는 해를 상상했다. 아니, 비가 왔어. 비가 내리는지 창문 곁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촉촉 거리는 비.

처음 마주한 장소여도 익숙함은 금세 찾아왔다. 방의 크기, 신경 쓰지 않고 올려다 둔 화장품들, 연식이 오래된 에어컨의 서툰 온도 조절능력까지. 핸드폰 액정을 열 때마다 30분이 지나 있고 눈은 떴다 감았다, 비를 바라보았다가 건물을 응시했다가 옆을 확인하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많은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대부분 헬륨풍선처럼 위로 솟아오르거나, 바람이 빠져 추락하고 말았다. 너는..으로 시작하다가 나는..으로 끝나기 마련인 것들. 질문은 힘이 있음과 동시에 두려움을 데리고 온다.

생존의 위협보다, 이대로라면 꽤나 무해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상상력이 닿을 때마다 나는 뒤척거렸다. 그리고 그 뒤척거림은 전염되곤 했다. 덥다가 춥다가, 켰다가 껐다가, 깼다가 깨웠다가, 마지막 밤은 술도 잠도 아무것도 취하지 못한 채 펼쳤다가 접혔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 일하는 전화를 받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모르는 말을 할 때. 같이 나가서 춤추자고 했을 때. 춤을 출 때 한발짝 이상 다가오지 않을 때. 어린아이처럼 물어보면 어른처럼 차분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대답을 해줄 때. 살짝살짝 흘러나오는 향수냄새. 굉장히 잘 정리된 손톱의 끝. 나쁘다, 예쁘다, 연습한 삐뚤빼뚤한 한글.


뜨겁기보단 밍밍하고, 끈적하기보다는 현실적인 로맨스였다.


눈빛도 대화도 추억도 일 인분의 몫으로 남아 설레하고, 후회하고, 돌이켜보고, 추억으로 넘겨두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아주 미세한 감각까지도 이 여름은 기억해 주길. 또 다가올 우연과 인연으로 무뎌지더라도, 처음만은 지켜주기를.

작가의 이전글 지하철 시위 그 한가운데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