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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깃글 Aug 17. 2023

어린이‘와’의 세계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독후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스무 살, 혹은 열일곱 살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그 선택을 늘 거절한다. 지금 어른으로서 주어진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포기할 수 없어서. 지출과 저축,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은 선택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건 확실히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회사라는 곳을 다니며 돈을 벌고, 새벽에 친구들과 더 놀고 싶다면 놀다가 다음날 내 체력에 기대를 걸 수 있고, 누군가의 허락 없이 운동화 끈을 묶고 당장 나가서 달려도 괜찮은 삶. 스물이나 열일곱이 아닌 여섯, 열두 살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자식이나 조카가 없는 나에게 그 세계는 바다 저 건너 건너의 섬 같다. 인스타그램 화면 속으로만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인친'같은 요원함이 있다. 예상되는 책의 주제와 두께, 표지로 이 책을 가벼이 읽으려고 했던 마음을 반성한다. 최근에 만난 어떤 콘텐츠보다 마음이 울렁울렁거리고, 미끌미끌해졌다. 몇몇 이야기는 먼지 가득한 도시 속에서 빗길에 넘어졌다가 까진 무릎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지나간 일이 빠르게 지워지고, 무뎌진다. 나는 가끔 그런 뭉툭함은 현재와 미래에도 적용된다. 분명히 너무 맛난 음식이었는데 맛이 같아도 내 혀가 더 이상 그렇지 않을 때, 반가운 사람이 싫증 나질 때, 감사한 일에 그 마음이 빠르게 식고 다른 감정으로 채워질 때. 그럴 때, 어른이라는 지점에서 멀어지고 싶다.


아이들은 할 수 있다, 조금 더딜 뿐. 어른이라면 그 더딤을 이해하고, 인내하고, 다그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작가는 그래서 그러한 어른이 되는 것이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일 인분의 삶, 일 인분의 어린이에 대해서도 나 스스로 간과한 것이 없나 끊임없이 반성했다. 어떤 아이에게 존재부정적인 말을 하진 않았을까, 잘못된 본보기를 보인 적은 없었을까, 모두가 보는 콘텐츠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이나 한 적이 있었을까, 어떠한 마음으로 어린이와 같이 살 수 있는 것일까.


아직 어른이라는 세계도 적응하기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이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내 삶에, 이 모임에, 세상에 방울방울 떨어져 퍼져가는 것을 기대한다. 그것이 어떤 향을 머금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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