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아빠인 저는 아내에 비해 육아에 참여하는 시간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야근도 많고 회식도 많죠. 주말에 일을 하거나 며칠씩 출장을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제게 ‘일과 가정의 균형’이라는 말은 마냥 편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내와 비슷한 시간 육아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턱대고 야근이나 회식을 거부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습니다.
‘육아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이를 받아들이자. 대신 이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정성을 쏟자.’
그렇게 육아 책과 육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기에 제대로 된 육아 지식을 얻고 싶었죠. 다양한 육아 책을 보면서 선배 엄마들이 육아에서 느끼는 감정, 아빠 역할의 중요성, 아이들의 발달 단계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아빠가 쓴 육아 책들을 많이 봅니다. 아빠가 잘 할 수 있는 육아법도 알게 되고 아빠만이 느끼는 감정에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 역시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아빠가 쓴 육아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전업주부 아빠입니다. 최근 서점가에는 육아 휴직을 경험하고 쓴 아빠 육아책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이 분은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 양육자의 삶을 살고 있더군요. 주말부부, 독박육아까지 경험하셨죠.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디지털노마드의 삶이 가능한 덕분이었습니다만 책을 읽으며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좌충우돌 아빠 육아 경험을 읽으며 크게 세 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업주부 아빠의 말 못할 고민
주 양육자 아빠의 삶에는 생각지도 못한 고민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다른 엄마들과 융화되지 못하는 낯섦, 외로움이 있더군요. 직장인 아빠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엄마들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과 삼삼오오 공동 육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함께 문화센터에 다니고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아이들을 풀어 놓기도 하죠. 하지만 전업주부 아빠가 그 무리에 끼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남편 없는 집에서 다른 엄마와 함께 육아한다? 정서상 매우 불편하지요. ‘왜 나는 친구 집에 자유롭게 못가냐’는 말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는 작가의 말이 안타깝게 느껴지더군요.
역시 일보다 육아가 힘들다
출처 : 게티 이미지 뱅크
육아를 전담한 아빠가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육아를 본격적으로 한 아빠들 모두가 우울증을 경험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행복에 관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부와 명예보다는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연결, 관계의 질이었습니다. 반면 육아는 그렇지 못하죠.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다 보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회나 타인으로부터 고립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지요. 저자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죠. 주말부부 하는 동안 저자의 몸과 마음은 극도로 피폐해져갑니다. 아이는 매일 아침 엄마를 찾아 울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여러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진 저자는 결국 둘째 갖기를 포기합니다. 덤덤히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맞벌이 부부들의 현 주소를 느낄 수 있었죠.
최고의 육아는 화목한 부부관계에서 나온다
육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 맞잡은 부부의 두 손 (출처 : Pinterest)
참 쉽지 않은 주 양육자의 삶에 저자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육아가 주는 스트레스, 가장으로서 느끼는 경제적 책임감 등으로 쇼크를 경험하기도 했죠. 이를 이겨낸 저자는 당시의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로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꼽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공감을 느꼈습니다. 부모가 되면 모든 신경은 아이에게 집중됩니다. 서로를 향하던 관심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지요. 떨어진 관심, 육아에 대한 서로 다른 기대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예민할 때에는 더욱 그렇고요. 이 때 필요한 것이 나만을 지지해 주는 한 사람입니다. 저자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아내의 표현 때문에 육아를 전담하면서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고백하는데요. 바닥을 경험했을 때만큼은 아내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죠. 최고의 육아는 화목한 부부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전업주부 아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아빠나 육아에 대해 잘 모르는 아빠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신생아 황달, 어린이 집 종류, 보육료 지원에 대한 TIP 등도 잘 나와 있어 육아를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아빠 육아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책 뒷부분에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의 말’이 있는데요. 그 중 ‘장난감 다 버릴 거야.’라는 말에서 가슴이 뜨끔하더군요.
주말 오전, 아이들과 정리정돈 문제로 실랑이를 하다가
“그래, 정리 하지 마! 너희들이 장난감을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아빠가 다 갖다 버릴게!”
라고 소리치며 버리는 시늉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장난감이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른에겐 휴대폰 정도의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휴대폰 쳐다보느라 아이와의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군요. 아빠로서 역할을 다 하지 않으니 휴대폰을 갖다 버리겠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제 기분은 어떨까요?
제 모습을 반성하기보다는 휴대폰을 갖다 버린다는 말에 서운함이나 불만을 느낄 것입니다.
아이에게도 소중한 장난감을 너무 쉽게 버리겠다고 협박(?)했던 제 모습이 많이 부끄럽더군요.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앞으로는 ‘장난감을 버리겠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