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의 나에게 아윤이를 데려다주었다.

11. 엄마의 플레이리스트: 반복재생과 랜덤재생의 사이

by 울보엄마

매일 아침 7시 50분,

링딩동~잔잔한 알람이 나를 깨운다.

일어나 일부러 불을 켜고,

큰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간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흐느끼듯 일어나는 이아윤 씨.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한다.

“유치원... 가기 싫어...”
하아, 나의 하루, 반복재생이 시작됐군.


아이를 어르고 달래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고, 양치와 세수를 한 뒤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가 그렇게도 타기 싫어하는 유치원 버스에

그녀를 밀어 넣는다.
그렇게 오전 반복재생곡이 끝난다.


아이가 없는 시간은 내가 만드는 랜덤재생 시간 같지만 사실은 정해진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움직이는

‘가짜 랜덤’ 일뿐이다.

오늘은 청소기, 밀대질, 빨래, 운동, 밥 먹기.

내일은 운동, 밥, 빨래, 화장실 청소.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른 하루.


그 안에서 지루하지만 평온하고,

평온하지만 은근히 우울한 나만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런데 그 온전한 나의 시간에도

결국 아윤이 걱정은 빠지지 않는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이지... 아, 지겨워. 밥 생각... 하아...’
그렇게 넋 놓고 있다 보면 엄마의 랜덤재생 곡들이 자동 재생된다.


오늘 아윤이는 기분 좋게 올까, 슬프게 올까?
오늘 그녀의 기분은 ‘맑음’이다.

“지니야! 아기상어 틀어줘!”조잘조잘 묻지도 않은 유치원 얘기를 시작하더니,

끝내 내게 유치원 얘기를 금지시킨다.


“엄마, 유치원 얘기하지 마!”

“나 안 했어... 네가 했지...”

‘지니야... <말할 수 없는 비밀> OST 틀어줘... 후...’


아윤이의 기분에 따라 랜덤재생 곡은

국악에서 팝송, 동요에서 피아노곡까지

산을 넘나 든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부터 모든 초점이 아이에게만 간다.
그래서 똑같은 하루도 결코 똑같지 않다.
44개월 된 그녀의 하루 기분 종류는 최소 250가지는 되는 것 같다.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설거지하고, 책을 읽어주고, 영어도 읽어주고...
똑같이 흘러가는 반복재생 속에

아윤이라는 랜덤재생이 들어 있다.


반복재생에 지쳐갈 때쯤 아윤이의 랜덤재생이

내게 힘을 주기도 하고, 내 모든 기력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그게 엄마다.


엄마라는 하루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무한재생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여덟 살의 나에게 아윤이를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