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의 나에게 아윤이를 데려다주었다

10. 작았던 나의 동굴

by 울보엄마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나에게뿐 아니라 내 가족들에게도 무거운 이야기다.

그때의 나의 결핍은 단지 나 하나의 것이 아니었고, 결국엔 모두의 결핍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에 상처받는 이가 아무도 없길 바란다.

지금은 충분히 행복하니까.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사랑받았다는 확신’보다는

‘그럭저럭 잘 살아냈다’는 안도감이 먼저 떠오른다.


부모님의 다툼은 두려웠지만 익숙했고,

결국 초등학교 4학년 때 두 분은 이혼하셨다.

그 후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같이 살던 오빠와 동생, 그리고 나—

셋 중 누가 더 불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가장 눈치 보며 살았던 둘째였던거 같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할머니는 파지를 주워 팔았고,

우리는 급식비와 학비를 지원받으며 살았다.

그게 부끄럽지 않았던 건,

“없는 걸 어쩌라고”라는 체념이

나에겐 익숙했기 때문이다.


기억 속 가장 선명한 장면 하나.


어느 여름날,

시장 근처 집에서 놀다 들어왔을 때 수박이 있었다.

먹으라기에 문득 궁금했다.

‘내 몫이 남아 있을까?’


어린 나는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없어져 있을 거란 걸

알면서도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역시나,

내 몫은 없었다.


내가 울었는지 웃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누군가의 아이가 되고 싶었다.


확인받지 못한 아이는 결핍 속에 자랐고,

나는 그럼에도 밝아야 했다.

내가 웃으면 할머니가 웃었으니까.

누구의 아이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웃게 하고 싶었다.


6년의 중고등학교 시절 동안,

나는 세 번 왕따를 당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반 카페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내 얘기들은 어느 하나 수긍할 수 없었다.

수긍할 수 없어서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뭘 하면 안 될까’라며

나를 다독이기보다 피할 구멍을 찾았다.

마치 그게 내 운명인 것처럼.

그리고 그 지독한 운명은,

내가 좋아했던 친구들마저 모두 데려갔다.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에 목매고,

미움받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어린 소녀는

자꾸만 혼자가 되었다.


힘든 학창 시절이었다.

가난도, 따돌림도, 결코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 모든 걸 내 결핍으로 받아들였고

조용히 마음 안에 쌓아두었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특히 가족에게는.

그래서 나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닌,

또 다른 싸움터였다.


성인이 된 후,

아빠에게 일이 생겼고

할머니는 지방으로 내려가셨다.

집에 남은 나는 아빠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말로, 감정으로,

때로는 폭력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는 군대에 있었고,

동생은 고3이었다.

나 혼자 도망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버텼다. 또 견뎠다.


그 누구의 아이도 아니었던 어린아이는,

그 누구의 친구도 되지 못한 소녀로 자랐고

또다시 그 누구의 아이도 아닌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결핍을 품은 채 오늘의 내가 되었다.

지금은 사랑도, 가족도, 웃음도 있지만

그 어둠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가 안아주고 싶다.


‘잘 버텼어.

네가 버텨줘서 지금의 내가 있어.’


무서워 말아.

너, 나중에 단단한 어른이 되어 있어.

고생했어. 고마워,

작은 나의 소녀야.


그렇게 나는

마음 깊이 상처받은

내 안의 작은 소녀를

밝은 세상으로 날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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