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엄마가 된 나의 동굴
“아윤이가 행복하려면,
엄마인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해.”
이 말은 엄마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듣게 된다. 하지만 정말 가슴 깊이 와닿은 건,
엄마가 된 지 44개월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는 매일 아이의 울음을 안고,
아이의 감정을 먼저 받아주며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아윤이를 웃게 하려고 나를 다그쳤고,
내 감정은 “나중에”,
내 힘듦은 “조금만 더 참자”라며 늘 뒤로 미뤘다.
하지만 아이는 안다.
엄마가 억지로 웃는지,
진짜 괜찮은지.
내가 지친 얼굴로 “괜찮아”라고 말해도,
아윤이는 괜찮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힘들어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인 내가 무너지면, 아이도 무너진다.
나를 돌보는 일이 곧 아윤이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막막했다...
아윤이와 함께 걷는 길은 햇살 가득한 산책길인데,
내 마음속의 길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동굴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파에 눕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며
무감정의 동굴 속으로 점점 더 들어갔다.
그리고 하원이 가까워지면,
그제야 겨우 일어나 움직였다.
엄마니까,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 시간은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냥 텅 빈 기분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깊은 마음속까지 내려가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아윤이를 충분히 챙기지 못하는 나를 마주했다.
아이가 먹는 밥은 점점 더 허술해졌고, 귀찮아졌다.
아윤이 밥은 나의 자존감이었다.
또래보다 큰 아이,
잘 먹고 잘 크는 아이.
나는 “엄마로서 정말 잘하고 있다”는 걸
그걸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자존감이 흔들리자,
마음은 더 깊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감정은 그냥 “눈물이 나는” 슬픔과는 달랐다. 형체도, 이름도 없었다.
그저 무겁고,
멈춰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심했다.
“정신 차리자. 아이를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나야 해.”
짧게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천천히 밥을 먹고,
창문을 열어 청소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지금은 이게 전부야.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어.”
그렇게 수면 위로 조금씩 올라오자,
아윤이는 언제나처럼 나를 안아주듯 웃어주었다.
그 웃음은 나를 다시 살게 했다.
진심으로.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지금도 잘하고 있어.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어.
아윤아, 너 덕분에 엄마가 다시 엄마가 되어가고 있어.”
그 말은 아윤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힘이 되어주었다.
아윤이의 웃음은 여전히 나의 큰 기쁨이지만,
이제는 내 웃음도 꼭 챙긴다.
엄마가 먼저 환하게 웃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안정감과 울타리가 된다는 걸
조금씩, 매일매일 배우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반복된 일상 속에서도 아이와 손잡고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
그게 내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아이를 더 웃게 만든다.
나를 찾는 시간 속에서 알게 됐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있어야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지켜낼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흔들리지 않는 고목나무처럼 단단하게 서서
아윤이 곁을 지키겠다고.
그렇게 난 또,
나로 시작해서 엄마로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