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서만 측정될 수 있다.” by. 볼테르
“그거, 제 일 아닌데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몫만을 챙기고 경쟁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똑똑하고 현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해 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영업팀에서 근무하면 영업을 잘 따오는 것이 저의 역할이자 능력의 척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화려한 언변으로 영업을 잘 수주해 와도 운영팀이 포화 상태라면 그것은 그저 수주했을 뿐이지 잘 일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반대로 운영팀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다면 고객사에 맞춘 제안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빛 좋은 개살구 제안이 되고 그 사업을 받은 운영팀은 다시 영업팀과 협조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많이 늘어날수록 팀 및 부서 간의 협동과 연대 의식은 점점 사라지고 마치 독립된 섬처럼 각자 살아남기 바쁜 회사생활이 되는 악영향을 초래합니다.
위와 같은 경험을 통해 회사 일이란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과 유기적인 “협동, 도움,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내 실적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는 체스의 폰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협동과 연대의 강함은 체스 게임의 폰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스의 영혼 폰
체스 이론가 필리도어(Philidor)는 “폰은 체스의 영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폰의 진형에 따라 큰 전략이 달라지며 운영의 흐름을 결정하기 때문이며, 체스만의 룰 승진(PROMOTION)을 통해 게임 판도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승진에 대해서는 향후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타 전략 보드게임과는 다르게 폰이 체스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폰의 독특한 특징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바로 기물의 진행 방향과 공격 방향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전략 보드게임 기물은 진행 방향과 공격 방향이 궤를 같이합니다. 예를 들어 장기의 졸은 한 칸 전진 할 수 있으며 그 전진 방향에 상대의 기물이 있다면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게임말이 이와 같은 룰을 따르며, 이는 체스의 폰 외에 다른 기물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폰 만큼은 다릅니다. 폰은 오로지 앞으로 한 칸을 가되(시작 시 두 칸 전진도 가능) 상대방의 기물이 앞에 있다면 공격도 불가능하고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는 체스가 타 게임과 갖는 차별성이자 폰의 중요성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폰의 대각선 행마
폰으로 보는 인간의 연대
그렇다면 이러한 폰의 진행 방향과 공격 방향이 다른 이유는 왜 그런 것일까요?
아쉽게도 아직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폰의 움직임을 보고 그리스의 전술 대형 팔랑크스(Phalanx)를 떠올렸습니다.
팔랑크스란 큰 원형 방패를 일렬로 포개어 두터운 방패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창을 통해 공격하는 전술을 말합니다. 이 팔랑크스 전술의 주목할 점은 방패 대열을 통해 자신의 반신과 왼쪽 동료를 동시에 방어하고 나머지 반신은 오른쪽 동료가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옆 동료를 신뢰하고 연대하지 못한다면 할 수 없는 전술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300에서 이 팔랑크스 대형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방패처럼 움직이며 싸운다. 우리 힘의 원천이지. 왼쪽 병사의 허벅지부터 목까지 방패로 보호해줘야 한다. 단 한 사람만 뚫려도 무용지물이 돼.” - 영화 300 중 -
옆 동료를 지키는 팔랑크스 대형
필자가 폰을 통해 팔랑크스를 떠올린 이유는 폰의 대각선 공격이 진형을 유지하기 적합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폰의 대각선 공격은 전진한 옆의 폰을 지켜주어 폰 대열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폰으로 진영을 이룬다면 체스에서 가장 강한 말인 퀸이 있다고 해도 쉽게 뚫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폰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항상 옆의 폰이 지지해 주지 않는다면 방패와 창 없이 전쟁에 나간 민간인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돼버립니다. 그렇기에 폰은 연대로 이뤄진 집단의 강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립된 약점 폰, 회사의 사일로 현상
반면 진영이 무너져서 폰이 체스판에 홀로 있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를 체스에서는 고립된 폰이라고 표현합니다. 고립된 폰은 약점 폰입니다. 왜냐하면 고립된 폰을 지키기 위하여 폰보다 더 가치가 높은 기물(이를 테면 나이트나 비숍 등)로 폰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필연적으로 그 기물은 폰을 위해서 묶여 있게 되고 그곳에는 틈이 생기게 됩니다.
고립된 폰이 나타나는 이유는 폰 대열이 끊겨 서로를 지킬 수가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회사생활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설명한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사일로 현상(silo effefct)입니다.
‘부서 이기주의 현상’ 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이 현상은 한 조직 안에서 개별 부서끼리 담을 쌓고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사일로 현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결성의 부재(Disconnected)'입니다. 부서 및 조직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보가 유기적으로 흐르지 않고 소통에 방해가 됩니다. 마치 폰의 대열이 끊겨 고립된 폰이 여러 개 만들어진 상황과 같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조직에도 손해가 됩니다.
동료의 연대가 나의 무기
연대는 조직의 견고한 진형을 만들어 줍니다. 견고한 진형이란 조직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회사 생활은 개인의 업무로 끝나는 일이 없으며 유기적이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생활에서 업무란 서로가 소통하고 뒤를 받쳐주지 않으면 개인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만을 중시하는 업무 방식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러한 행동은 스스로가 고립된 폰이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 다른 폰보다 앞서나가 보이지만 결국 고립된 폰은 상대방에게 잡힐 운명입니다.
우리는 폰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의 동료는 나의 지지와 도움 없이는 두 칸 이상 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옆 동료의 지지와 도움 없이는 두 칸 이상 가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견고하고 단단하게 연대 된 조직이란 바로 내가 전진할 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동료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소통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무기가 되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 우리의 맨파워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