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도대체 누굴까?
이 글은 제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합니다.
2008년 어느 날, 정체불명의 인물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암호화 메일링 리스트에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람은 완벽한 영어로 소통했고, 일본과는 연고가 없어 보였다는 것.
굳이 왜 일본 이름을 선택했을까? 나는 이것이 '자신을 숨기기 위한 완벽한 가면'이었다고 추측한다. 더 기묘한 사실은 할 피니(Hal Finney)라는 미국의 암호학 거장이 사토시와 같은 도시에 살았고, 공교롭게도 그의 이웃 중에 '도리안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웃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일까? 이쯤 되면 사토시라는 닉네임 자체에 숨은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지 상상하게 된다.
사용한 이메일 주소도 심상치 않다. 일반적인 Gmail이나 야후가 아닌 GMX라는 독일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이는 당시 영어권 개발자들에겐 다소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우연일까? 할 피니 역시 GMX 이메일 계정을 사용한 흔적이 있었고, 익명성을 중시하는 두 사람이 동일한 유형의 서비스를 택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동일인물일 가능성에 힘을 싣는 작은 퍼즐 조각처럼 느껴진다.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직후, 사토시라는 인물은 한 가지 특별한 행동을 한다. 바로 비트코인의 최초의 거래를 발생시킨 것인데, 그 수신자는 다름 아닌 '할 피니'. 사토시는 1월 12일에 자신이 채굴한 코인 10 BTC를 할 피니에게 전송했고, 이는 블록체인에 기록된 역사상 첫 비트코인 송금으로 남아 있다. 왜 하필 '할 피니' 였을까? 보통 신기술을 만들었다면 누구한테 먼저 테스트 해볼까? 자기 자신이지 않을까?
할 피니 본인도 비트코인의 시작과 동시에 남다른 흔적을 남겼다. 2009년 1월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짧게 한 마디를 올렸다. “Running bitcoin”.
네트워크 가동에 참여했음을 알리는 이 역사적인 첫 트윗은, 이후 돌아보면 마치 비트코인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사토시로부터 첫 거래를 받기 불과 몇 시간 전, 할 피니는 이미 세상에 “비트코인을 가동 중”이라고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인물의 행보가 이토록 정확히 포개지는 우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비트코인이 막 세상에 공개되던 무렵부터 사토시와 할 피니는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알려진 최초의 비공개 이메일 기록을 보면, 2008년 11월 할 피니는 사토시의 논문을 읽고 직접 연락을 취해 수정 사항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사토시는 비트코인 소스코드 공개 직후 할 피니에게 개인적으로 버전 0.1 소프트웨어를 보내주며 테스트를 부탁했고, 할 피니는 주말을 이용해 코드를 검토하겠다고 답장한다. 결국 사토시는 오픈소스 개발 플랫폼(Sourceforge) 상의 비트코인 프로젝트에 할 피니를 추가하여, 필요시 직접 코드를 수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기도 하는데, 사토시가 누구보다도 할 피니를 신뢰하며 사실상의 공동 개발자로서 대우한 셈.
두 사람은 이메일과 포럼을 오가며 버그를 잡고 개선 방향을 논의하게 된다. 할 피니는 원래도 암호학 분야의 전설적인 프로그래머였고, 90년대에 PGP 암호화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으며 '재사용 가능한 작업증명(RPOW)'이라는 디지털 캐시 시스템을 2004년에 직접 만들어본 경험도 있었다.
흥미롭게도 RPOW는 비트코인의 핵심 아이디어(작업증명을 통한 가치 창출)와 맥을 같이하는 개념이라는 것. 다시 말해, 할 피니는 비트코인의 탄생에 필요한 퍼즐 조각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갖추고 있었던 인물이다.
어쩌면 그가 사토시로서 비트코인을 설계하고 구현했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배경이다.
비트코인이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2010년 말 어느 날을 끝으로 사토시는 돌연 자취를 감춘다. 온라인 포럼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 이후 그는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토시라는 이름은 그렇게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할 피니의 개인사에도 같은 시기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할 피니는 2009년 중반 루게릭병(ALS) 진단을 받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마비되어 갔다. 그래도 한동안 그는 집에서 비트코인 코드 개선에 참여하며 열정을 이어갔지만, 병세 악화로 2011년 초 결국 일을 접고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사토시가 잠적한 시기와 할 피니가 활동을 중단한 시기가 절묘하게도 겹치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언론과 당국의 관심을 피해 은둔했다고들 생각하지만, 혹자는 그가 실제로 투병 중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온라인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속삭인다. 할 피니의 사례를 대입하면 많은 부분 설명이 된다. 처음 몇 년간 왕성하게 코드와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사토시가 점차 글을 줄이고 사라진 배경에, 할 피니에게 들이닥친 병마라는 현실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할 피니는 2013년경 거의 전신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눈동자로 컴퓨터를 제어하며 프로그래밍을 이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육신의 한계를 이겨낼 순 없었다. 사토시가 남긴 100만 비트코인에 손대지 않고 잠적한 것 역시, 만약 할 피니가 사토시였다면 병으로 인한 부재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2014년 초 한 저널리스트가 중증의 할 피니를 찾아가 사토시의 정체에 대해 물은 일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할 피니는 자신의 눈짓으로 답변을 전해야 했는데, 그는 “자신은 사토시가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도 미묘한 미소를 띠었다고 전해진다. 그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할 피니의 주변에는 사토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여러 암시들이 가득했다고 회고했다.
할 피니는 2014년 8월, 끝내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죽음 이후를 스스로 설계한 인물이었기 때문. 과학기술의 미래를 믿었던 할 피니는 평소 수명 연장과 트랜스휴머니즘에 깊은 관심을 두었고, 자신의 몸을 냉동 보존하기로 결정한다. 맞다. 냉동 인간이다.
숨을 거둔 직후 병원에서 특별 처치를 거쳐 시신을 영하의 질소 탱크 속에 안치했는데, 이는 훗날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선택이었다. 그의 육신은 얼음 속에 있지만, 언젠가 다시 눈을 뜰 수도 있다는 희망처럼, 사토시에 얽힌 비밀들도 언젠가 풀릴 수 있을까?
비트코인을 만든 이는 끝내 누구였을까? 확실한 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할 피니의 삶과 비트코인의 역사를 겹쳐보면, 두 그림자가 하나로 포개지는 순간들이 너무도 정교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익명 프로젝트를 완성하고는, 병마와 싸우며 조용히 막을 내린 천재였을지 모른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음 속에 봉인된 비밀처럼,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그 진실의 한 조각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상상해 본다.
혹시, 사토시 나카모토는 할 피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