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1.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가족들과 도심 외곽에 한 식당을 찾았다. 그곳은 건물이 두 채가 있었는데, 하나는 우리가 예약한 식당이었고 다른 하나는 까페였다. 건물 앞 사이로 너른 잔디밭이 있고, y자로 난 잔디밭 한 가운데 길을 통과해 주차장을 공유하는 구조였다. 우리는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밖에 있었다. 3돌도 안 된 아이가 건물 안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인내하기란 쉽지 않다. 바짝 식사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나올 요량이었다. 아이는 신나게 잔디밭을 뛰놀고 있었다.
기다리며 나는 아이에게 토끼풀꽃으로 시계를 만들어 주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고, 아빠에게 달려가 자랑을 했다. “아빠 소헌이가 꽃시계를 찼어요!”
그때 까페 쪽에서 나오던 이들이 있었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나오려면 아이 옆을 지나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이미 얼굴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옆으로 여자들이 지나가자 아이는 대뜸 손목을 보여주며 “소헌이가 꽃시계를 찼어요.”
그들의 표정에서 이미 불길한 기운을 읽었던 나는 얼른 아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 말을 하자마자 그들은 “어흑, 뭐야!!” 하며 벌레 보듯 혐오의 눈빛을 아이에게 보냈다. 마스크를 써도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아이는 처음 느껴보는 불쾌한 반응에 어쩔줄 몰라했다. 건물 에서 뛰는 것도 아니고 뭐가 그리 싫었을까. 나도 20대에 그리 아이들을 좋아한 건 아니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반응할 이유가 있을까. 동네를 다녀도 항상 예쁘다는 말을 듣던 아이었기에 아이는 더 놀랐다. 예쁘다는 건 진짜 외모가 어여쁘다기보다 인사도 잘 하고 몇 살이냐는 질문에도 또박또박 대답하던 아이었으니까.
나는 달려가 아이를 얼른 안아 올렸다.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가가 갑자기 말해서 언니들이 놀랬나봐. 괜찮아. 모두가 다 소헌이를 좋아하지는 않아.”
2.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아이 놀이방이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는데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자매가 좀 시끄럽게 떠들었다. 물론 놀이방 안에서였지만 뛰어다니면서 잡으러다니고, 소리를 크게 지르기도 하고. 식사하는데 좀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할아버지와 아저씨 중간즈음 되는 남성분이 시끄럽다며 아이들에게 조용히 놀라고 주의를 주었다. 우리 부부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말했다. “이제 좀 조용해 지겠군”
그런데 더 놀라운건 아이 아버지가 그 할아버지에게 가서 “당신이 뭔데 우리 아이를 혼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아버지는 덩치가 크고 딱 봐도 운동을 한 몸이었다. 딱 벌어진 가슴으로 왜소한 할아버지를 밀어봍였다. 할아버지 가족들도 있었는데 아들내외와 손자들로 보인다. 아들은 할아버지의 그 행동이 챙피했는지 식사도 다 마치지 못하고 황급히 모시고 나갔다. 잘 산다는 반포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분명 시끄러운 상황이었고, 어른으로서 조용히 하란 말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요새는 힘있으면 다야.”
“직원이 중재했으면 괜찮았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꺼야?”
아이를 뱃속에 넣고 있던 나로서는 남일같지 않아 앞으로 닥쳐올 미래가 걱정이 되었다.
“음, 나 같으면 아예 식당을 안 데려왔을 것 같다. “
3.
그리고 오늘 사건이 터졌다.
할머니가 전시 장소를 물색한다고 한 까페를 답사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처음 가보는 길을 30여분 달렸다. 산길에 논길에 한참 들어가면서 “이런 곳까지 사람들이 보러 오겠어?”란 농담도 하고. 가보니 아주 멋진 건물에 야외 테라스까지 있었다.
나는 주차를 하고 먼저 할머니와 아이를 내려 주었다. 까페에 들어서던 나는 문 앞에 써 있는 “노키즈존”을 보고 화들짝 놀라 뛰어들어갔다.
“엄마, 여기 노키즈존이야”
“알어 안그래도 얘기 하더라.”
“근데 왜 안 나왔어, 아이랑 여기 문 앞에 있을 테니 둘러보고 와”
그러자 직원이 와서 이야기했다.
“여기는 출입이 안 되는 곳입니다. 아예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가 드러누웠다.
“나 안 나갈래!”
까페 온다고 꼬까옷 차려 입고 뭐 먹을지 초코우유와 쥬스 사이를 고민하던 아이에게 나가라고 한다면, 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까? 아니다. 자신이 할수 있는 최대한의 의사표현을 한다. 그것이 바로 드러눕는 것이다. 나는 순간 화가 나 소리쳤다.
“야, 네가 그러니까 이런데가 생기는거야!”
나는 아이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들어올려 안고 문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나는 여러모로 화가 났다.
설레던 마음으로 들어온 길을 다시 나간다. 아이는 금방 잊어버린 듯 할머니와 조잘조잘 아야기를 한다. 나는 화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노키즈존이라니 이거 어린이 인권에 문제 있는 거 아냐? 흑인 금지, 동양인 금지, 조선인금지, 장애인 금지, 동성애자 금지 이런거랑 같은거 아냐?’
‘아이들이 자기 주장이 가능했다면 저런 출입통제를 할 수 있었을까?’
‘어휴 엄마는 앞에 노키즈존이라 써 있으면 들어가지 말아야지 왜 들어간거야.’
알고보니 내가 주차를 하는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아이가 밖에 연못이 있는 걸 보고 뛰어가다 유리에 부딪쳤단다. 그 안에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지 모른다. ‘그래, 저러니까 노키즈존 하는 거야’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를 보기만 해도 혐오하고, 실수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죄인이 되고 숨는다. 한편 왜 우리 애 기죽이냐는, 드라마에서만 보던 부모도 있고. 어른의 꾸지람을 못 참는 어른도 있다. 개인의 권리를 찾는 방식이 너무나 선택적이다. 노키즈존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엄마한테 물으니 자신은 평생 노키즈존은 처음 들었단다. 또 난 아이가 까페에 들어갈 수 있었어도 완벽히 통제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나는 무엇때문에 계속 화가 나는 건지 모르겠다.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