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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May 09. 2023

다시 설국에서 페르마타

음악치료사의 시선

 

  쉼표가 없는 음악은 때로 피로하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Major, Op.35>는 1881년 그가 비참한 결혼생활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갔던 스위스 제네바 연안 호수에서 머물다 단숨에 썼다고 한다. 초연 당시 난해하고 까다로워 당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도 고사했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많은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레파토리 중 하나가 되었다. 3악장 Allegro Vivacissimo는 바이올린 현과 활의 빠르고 거친 부빔에 쉴새 없이 음의 폭격이 쏟아진다. 바이올린이 부서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활질과 피치카토를 빠르게 구사하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초절정 기교를 뽐내며 살 수는 없다. 연주하는 이도 듣는 이도 피로감을 느낀다. 가끔은 천천히 Adagio로 걷고, Fermata(�)로 잠시 멈추기도 하며, 급할 때는 Vivace로 달리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숨으러 갔던 도야마를 2년 만에 돌아왔다. 페르마타, 잠시 멈춤. 다시 겨울이다. 눈은 산길 양쪽으로 여전히 견고한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시원한 기운이 코트 속을 파고든다. 온 세상의 빛은 다 가져와 모은 것처럼 눈이 부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더운 입김이 구름처럼 피어올랐을 때 내가 다시 돌아왔음을 실감하였다. 휴게소에 걸린 온도계가 –1℃를 가리킨다. 눈이 녹지 않으면서도 포근한 날씨, 적당히 추우면서 적당히 상쾌한 온도, 시야가 밝아지고 의식이 명료해졌다. 그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호 아저씨다!


  끝도 보이지 않은 하얀 설국에 우뚝 서 있는 낡은 일본식 가옥,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들이 경사진 지붕을 타고 우르르 무너진다. 2년 전 나의 힘들다는 메시지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오라던 영호아저씨는 그때처럼 우리를 깊은 설국으로 안내했다.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쌓인 눈 속에 파묻힌 우리의 목적지, 가와사키 아저씨의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을 초월한 듯 내 기억 속 그대로였다. 아저씨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오바짱과 함께 살고 있다. 도야마가 일본에서 그리 유명한 여행지는 아니었지만 그의 집은 늘 맛있는 음식과 음악, 그리고 여러 국적의 여행자들이 있었다.


  가와사키 아저씨의 집은 더 시끄러워졌다. 주말마다 오던 딸 치히로과 손녀들이 함께 살게 되었고, 그래서 예전만큼 파티는 자주 하지 못한다고 했다. 처음 보는 여행자의 무릎에 덥석 앉던 여섯 살짜리 꼬마 아마네는 이제 쑥스러움을 아는 소녀가 되었고, 언니 미츠키는 피아노 실력이 더 늘었다. 말썽이던 벽난로는 새 걸로 바뀌어 더욱 따스한 온기가 돌았다. 나는 고양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뚱냥이 닝은 그새 다이어트를 해서 늘씬한 미묘가 되었고, 그렇게 어렵게 마음을 얻었던 르네는 나를 못 본 척 한다. 에휴, 다시 시작이다. 코냥, 코냥은 어디로 간 거지?


  나도 달라진 것이 있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의 찐가족이 함께 왔다는 것이다. 엄마는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가와사키 아저씨 집에 꼭 와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 나의 여행을, 내가 만난 사람들을 궁금해 했다. 그래서 책도 배달할 겸, 가와사키 가족도 만날 겸, 그리고 영호 아저씨도 만날 겸, 이렇게 같이 오게 된 것이다.


  “그래도, 왔으니 파티는 해야지?”


  가와사키 아저씨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여 그 겨울 만났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은 금세 모였고, 삐그덕 거리는 거실 테이블에는 여전히 먹을 것이 넘쳐났다. 현정이는 미츠키와 젓가락으로 살살 돌려 타코야키를 만들었고, 영호 아저씨는 신선한 횟감을 접시에 담았다. 같이 나온 사진들을 함께 보고 2년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엄마는 내가 그랬듯 아저씨와 함께 젬베를 둠두두 쳐보기도 했다. 치히로는 맑은 목소리로 어린 시절 부르던 노래를 불렀다. 그때 내가 쩔쩔매며 쳤던 피아노 코드를 아저씨는 기타로 능숙하게 반주해 주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차가운 밤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렸지만,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치유의 음악, 음악치료가 별거인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따뜻한 음악과 서툰 언어가 그의 집에서는 넘쳐났다. 모든 게 축제였다. 성글게 널린 빨래도, 창틀에 쌓인 눈도, 하품하던 고양이들도, 간간히 들려오던 노랫소리도 아득하다. 시공을 초월한 듯 하얀 눈은 천천히 내렸다. 그때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는 어려웠지만 우리는 함께였다. 같은 공간에서 익숙하고도 새로웠다. 이런 행복한 경험들은 위로가 되었다. 여행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들, 사람의 온기, 흐르는 음악이 우리의 응어리를 녹여줄 때도 있으니까.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히 기대어 본다.       


  “이제 나는 자러 가야 해.”    


  일기예보를 확인하던 가와사키 아저씨가 말했다. 눈이 온다고 했다. 새벽에 눈을 치우는 일을 하는 그는 눈이 오는 날이면 바짝 긴장을 한다. 새벽 4시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도야마는 일본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오는 지역으로 한번에 성인 남자 키 높이 만큼 온다.


  도야마의 겨울에서 눈을 치우는 일은 아주 중요한 임무이다. 눈을 제때 치우지 않으면 온 마을이 마비가 된다. 또 커다란 기계차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있어 정신을 놓을 수 없다. 컨디션이 나쁘면 사고로 이어지기에 아저씨는 일찍 잠을 청한다. 그는 파티 중간에 자리를 빠져나와야 하는 걸 아쉬워했다.


 “나는 눈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눈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구요?”


  그는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중요한 임무를 맡은 이의 긴장 어린 감각일까. 눈이 오는 소리를 상상해 본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소리가 들리길 기다린다. 세상의 소음이 사그라들 때쯤 차가운 공기를 천천히 가르며 눈이 지붕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 수많은 눈송이들이 눈 위에 살포시 앉고, 또 그 위에 내려앉는다. 고요한 밤공기를 눈은 아주 느리고 온화하게 공명한다. 솜털 같은 눈은 이내 두터운 솜이불이 된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지붕의 눈들이 무겁게 미끄러진다.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니, Largo, 아주 장중하고도 느리게. 긴 온음표가 연주된다. 도야마의 시간은 멈춘 듯 무게감 있게 흐른다.


  여전히 그는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 노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일과 삶의 균형이 딱 맞는 일상이었다. 대도시 오사카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는 하루하루 빠르고 바쁘게, 쉴새 없이 음표가 오가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3악장 vivace처럼 살고 있었다. 활질을 삐끗하기라도 하면 무너진다. 그는 높은 업무의 강도와 잦은 야근으로 늘 피로했다. 그러다 이렇게 살아서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오바짱의 건강도 나빠졌다. 안 되겠다. 월급이 작아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 공기 좋은 곳에서 건강을 지키며 일과 삶의 벨런스를 맞춰보자. 그래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아무 연고도 없던 이곳 도야마의 시골로 이사 오기로.


  한때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에 미치고 경쟁에 지쳐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개념이다. 과거 연봉에 맞춰졌던 초점이 직업을 고를 때 칼퇴가 가능한지, 좋은 상사가 있는지,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지,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기준을 갖게 되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직업 선택이 갈리는 것이다.


  여기에 팬더믹 이후 재택근무, 유연근로제, 비대면 수업 등 다양한 일하기의 형태가 변주되었다. 정해진 장소로 출퇴근하던 지난 일하기의 형태보다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아무래도 일은 어떤 형태로든 진화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인생에서 직업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직업과 꿈을 동일시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했던 하나의 일이 직업 찾기였다.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과 일이 일치되기를 바란다. 일명 덕업일치. 그런데 좋아하는 것들이 일이 되었을 때는 온전히 즐겁지만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초절정 기교의 완성을 위해 더 빠르게 poco a poco presto로 쉴새 없이 달린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도 있다. 늘 최상의 성과를 내기는 어렵기에 적당히 타협도 해야 한다. 가끔 상상한다. 음악을 취미로 했으면 어땠을까. 이곳 도야마의 삶처럼 적당한 띄어쓰기와 쉼표가 자리할 수 있도록.  


  지금의 나는 어떨까. 음악치료사는 프리랜서가 많다. 워낙 음악치료사를 정규직으로 쓰는 곳이 없기도 하다. 나는 안정적이지는 않으나 그런대로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는게 큰 장점이다. 더구나 워킹맘이 되고 보니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더 절실하다. 또 반복을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꽤 적절한 직업이다. 새로운 음악, 상담기술 같은 공부도 계속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 귀찮은 일이지만, 반대로 내 성격에 자기계발이 없는 일에는 쉽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워낙 평생을 연습과 수련으로 살았으니까. 아직 사회적으로 생소한 직업이지만 여러 면에서 미래사회와 어울리는 직업이기도 하다. 돈은 많이 벌 수 있을까? 그것도 하기 나름인 것 같다. 내 나름의 가치와 돈의 균형을 맞추며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보통 빠르기(Moderato)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잠자리에 든 시각, 나는 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행복을 주체하지 못하고 지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시끌벅적했던 거실은 이제 고양이들이 차지했다. 녀석들은 난로 주변에 누워 늦은 밤 겨울의 적적함을 즐기고 있었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만 들린다. 예전에도 그랬듯 나는 내 집처럼 물을 끓여 차를 올리고 낡은 소파에 누웠다. 천장에 오래 묵은 서까래들이 보인다. 혹여 눈 오는 소리가 들릴까 귀 기울이며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검은 물체가 내 배 위로 뛰어들었다. 헛! 묵직하고도 따뜻한, 코냥이였다.


  낯선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던 코냥은 아까 화장실에서 딱 마주쳤다. 화장실 세면대 위에 올라가 수도꼭지를 핥는 게 아무래도 목이 마른 모양이었다. 나는 수도꼭지를 돌려 물이 졸졸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할짝할짝 물을 마시던 코냥은 이제 충분했던지 유유히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코냥, 너 나 기억 안나는 거니? 섭섭한데. 그래 2년 전 고작 열흘 남짓 지내다 간 여행자를 네가 어떻게 기억하겠니.  


  코냥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누워버린 내 배 위로 뛰어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보드라운 이마를 내 손등에 부비는 코냥,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화장실에서의 내 작은 호의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나를 기억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코냥은 내 무릎이 쥐가 날 정도로 한참을 머물다 내렸다. 맞다. 위로가 되는 건 고양이도 있었다.    



에세이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의 연장선에서 음악치료사의 일상과 직업적 생각을 담고 연재합니다. 책이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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