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수정 May 26. 2023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서로의 역할 경험기


최근 몇 주 사이 감사하게도 신간-음악치료사 관련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첫 인터뷰는 큰 신문사의 퇴직을 몇 달 앞둔 선임기자가 진행했고, 두번째 인터뷰는 대학일보의 갓 스물을 넘긴 대학기자였다. 그러니까 아주 베테랑 기자와 병아리 기자를 만나 나름 극과 극 체험을 했다. 게다가 내가 기자(?)가 된 일도 있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두 역할을 고루 맡은 것이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는데 기록 차원에서 써본다.


1.

모 신문사의 선임기자는 처음 통화 할 때부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말투가 너무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기자와 닮았기 때문이다. 약간 노련미가 넘치는 껄렁한 말투에 질문지를 굳이 뭐 보내냐, 나의 다른 기사를 참조해보라, 장소는 니가 섭외해라 등 ‘대충 니가 알아서 알아들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화를 끊고, ‘이거 진행해도 괜찮을까?’ 약간 걱정이 됐다. 내가 말을 잘 못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장소가 결정되고 막상 만났을 때는 장소답사도 미리 하시고 꽤 적극적으로 진행하셨으며, 상황대처도 유연했다. (사진 찍을 때 의자가 없어서 잠시 까페에서 빌려온다던지 하는)첫 만남에 “왜 이렇게 글을 잘 써요? 어디서 훈련받았어요?” 라고 하셔서 부담이 사르르 녹았다. 배시시 간이라도 내 줄 판이었다.


질문 역시 나에 대한 많은 사전 조사가 있었고, 음악과 심리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어떤 점은 깊게 파고들어 나도 간과한 부분을 사유케 하시고, 어떤 내용이 ‘보편적인가’에 관해서도 정확히 짚어주셔서 많이 배웠다.


더 놀란건 글이었는데, 본격 인터뷰 전 슬슬 물어보시던 것들 “(책에 등장하는)남편 어디서 만났냐”-“고등학교 선배에요”-“어디? ㅇㅇ고?” 이런 사소한 대화에서 나온 정보까지 녹여 썼다. 와! 이것이 리얼 기자로구나! 버릴게 없는 만남이었다. 연예인들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게 기사에 나온다더니 정말이겠구나 싶었다. (무섭)게다가 내 마음 속을 들어오신 듯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거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쓴다는 말이 이런거군.


2.

병아리 기자도 많은 준비를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고맙게도 책을 다 읽어주시고, 질문도 성의있게 준비해주셨다. 그런데 약간 단호한 면이 있었고(사진촬영을 굳이…)


놀란 건 글이었는데, 분명 내가 한 말이지만 뉘앙스가 오묘하게 다르다던가 방점이 엉뚱한데 찍혀 있었다. 약간의 가독성도 떨어지고…(그래, 대학생이 공부하느라 바쁠꺼야) 질문의 절반 내용은 사라짐(지면의 한계가 있으니…그런데 왜 물은건가요) 팩트체크하는데 내가 인터뷰이로서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일단 내가 너무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했구나 반성…(잘 덜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또는 많은 질문을 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한 질문에 간결한 답변을, 그리고 깊게 파고들수록 내면의 소리가 나오겠구나 싶다.(상담사와 비슷한 면이 있네) 두 분의 기자님 덕분에 많이 배웠다.


3.

반면, 내가 누군가를 인터뷰한 순간도 있었다. 물론 나의 첫 경험이다. 급작스레 이루어졌지만 역할이 바뀌게 된 것이니 재미가 있었다. 문명특급의 재재를 롤모델 삼아 열심히 사전조사를 했더랬다.


그러나 질문이 적절했는지, 간결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오히려 가시는 분 바짓가랑이 붙잡고 ‘한 마디만 더 해주세요’ 한 기분이었다.  


글을 쓸 때는 인터뷰 시간이 짧았던 게 오히려 ‘다행이다’ 하며 썼다. 한정된 분량이 있고, 들어가야 할 정보가 정해져 있었으며 글의 성격(프리뷰)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괜한 정보가 없어 아주 솎아내는데 편안했다. (인터뷰이가 베테랑)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엮는 재미가 있다. 인터뷰어가 되는 것도 꽤 매력적인 포지션이다.


4.

짧은 시간에 이 두 가지 역할을 하면서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인터뷰이로서는 내것을 이야기하면서 속풀이 느낌의 정서적 정화가 된 기분이다. 숨기고 싶었던 상황들에 대해 어쩔수 없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다보니 뭐, 별 일이긴 했지만 큰 일은 아니었던 것처럼 부피가 작아진다. 말 할수록 덜어졌다.


내가 말은 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 그거야 다 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기분은 누군가에 의해 적힌 내 말(인생)도 결국엔 내 것이라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가벼워진다.


인터뷰어로서는 반대로 일단 사전조사,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나라는 필터를 거치더라도 말투나 모습, 그 날의 분위기에 충실하면 적어도 거짓말(또는 왜곡)은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긴다.


실은 음악치료사는 예고된 인터뷰어라 할 수 있다. 인터뷰이(내담자)의 끊임없는 관찰자이며 기록자이기 때문이다. 세션일지라는 마감이 매 회기마다 있으니까. 우리는 더 나아가 비언어적인 것까지 기록하니까. 어쩌다보니 나는 훈련된 인터뷰어네! 이제 질문만 잘 하면


하… 빨리 일지나 쓰자.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설국에서 페르마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