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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Jun 04. 2023

선명해지다 흐려진다

음악치료사의 세션



세션에서 음원을 안 틀었다는 건 내가 쉬지 않고 뭔가를 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계속 치거나, 계속 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듣거나, 들으면서 치거나.  악기 연주를 하고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고 나면 숨이 헉헉 찬다. 아직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규에 의해 마스크를 차고 있으므로 호흡은 두 배로 가쁘고 내담자들 목소리는 잘 안들리고, 안 들리니 더 크게 부르고 세션이 끝나면 나도 모르게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


버거워도 어쩔  없다. 같은 연령이라 하더라도 그룹의 성향에 따라서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세부 곡목이 많이 달라진다. 똑같이 정서지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해도 노래를 선호하는 그룹이 있고, (노래) 하기 싫어하지만 악기 소리를 좋아하는 그룹이 있고, 또는 낙하산 놀이  신체활동을 선호하는 그룹이 있다. 이번엔 트로트 같은 대중가요보다는 찬송가 민요  음원에 없는 노래를  좋아하는 그룹이다. 여러 내담자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조합하여 개인의 정서지지 뿐만 아니라 그룹의 분위기도  조성해야 라포가 안정적으로 형성된다.


어느덧 올 해 세션도 초반을 벗어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출석율도 좋고 궤도에 안착한 기분이 들어 한시름 놓았다.


실은 올해 한 센터의 첫 세션에서 낯이 익은 한 내담자가 들어왔다. 이름도 낯익은 것이 이전에 만났던 분이 분명했다. 그러나 차트에는 기록이 없었다. 나중에 외장하드를 꺼내 지난 일지를 거슬러 뒤적여보니 2017년에 음악치료를 했던 기록이 있다. 무려 6년전. 아! 기억난다.


60세 초반 ㅇㅇㅇ내담자는 조현병 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 환시나 환청이 심하여 내가 감당하기에  어려운 분이었다.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면서 중얼중얼 한다던지 눈동자를 위로 뒤집어까면서 노려보기도 했다. 공격성도 있었기 때문에 세션실에 들어갈 때마다 무지 쫄았던 기억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했던 다른 내담자들도. 그런데  분을   다시 만난 것이다.


이제보니 그때보단 살이 좀 빠져 건강해 보였고, 눈빛도 독기가 좀 빠졌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아는 척을 했다.


“ㅇㅇㅇ님 다시 만났네요. 잘 지내셨죠?”

“어머! 선생님! 그럼요!”


역시나 그 분은 본인이 2017년에 음악치료 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내가 아는체 하자 문득 기억이 난 모양이다. 반가운 비명을 지르며 나를 끌어안았다. (접촉 금지잖아요) 초점 없던 눈동자에 갑자기 윤기가 흘렀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것은 “이것이 봉고였던가?” 하며 생소한 악기 이름을 기억하고 골랐다. 맙소사 점심 뭐 먹었는지도 기억 못하는 이가 6년 만에 만지는 ‘봉고’를 기억하다니. 첫회기의 일이다.


그 분은 이미 라포를 넘어 나의 열혈 팬이 되었다. 내가 뭐만 해도 환호성을 하며 열광하였고, 심지어 티비에 나오는 가수보다 잘 한다 엄지 척을 날렸다. 민망함은 나의 몫, 아 기타 연습 해야지.


2023년, 6월이 되며 드디어 센터에도 공식적으로 마스크 해지가 되었다. 3년만이다. 맨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도 내담자들도 뭔지 모르게 후련해졌다. 사실   얼굴 관찰이 불가능하니 하면서도 그들의 감정을 읽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럼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물어봐야 하니까.


아! 이제 접촉도 가능하단 얘기다. 세션 내내 나를 그윽하게 보던 ㅇㅇㅇ내담자는 세션이 끝나자마자 다가와 “에구, 고생 많았어요. 오늘은 꼭 안아주고 싶네.  ” 하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다들 몰려들어 그야말로 프리허그가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다독였다. 누가 누굴 봐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연차가 쌓일수록 나는 선명해지고 경계는 흐려진다.






에세이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의 연장선에서 음악치료사의 일상과 직업적 생각을 담고 연재합니다. 책이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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