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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Aug 05. 2023

애 말을 믿어야지

음악치료 스승은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댁에서 잔 날 아침, 아이는 뭐가 그리 설렜는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참 늦잠 자고 밥상 앞에 앉은 엄마에게 할머니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 소헌이가 종천저수지 가지고 글씨를 썼다.”

“그래?”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할머니가 스케치북을 펼쳐서 코 앞에 들이댔다.

“이것 봐. 종천저수지 안 갈 수가 없어”

거기에는 만 세살 아이가 늘상 그리는 케이크에 , 토끼들, 그리고 진짜 ‘종천 저수지를 가요라는 문구가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에이, 이걸 소헌이가 썼다고? 얘 아직 이렇게 가지런하게 못 써.”

“그래서 나도 놀랐다니깐. 이거 소헌이가 썼지?”

아이가 아주 당당한 눈빛으로 “네!”라고 했다.

“에이, 믿을 수 없는데?”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며 말하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동시에,

“애가 했다고 하면 믿어야지!”

앗! 네네. 딸래미가 그렇다고 하면 믿어야지요. 믿어야지 어쩌겠어요. 이런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의 부모님이라니! 고맙습니다. 훌쩍. 이 날 일정은 종천저수지 당첨이다.


내가 음악치료사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이렇게 부모님의 지지가 있어서일 것이다. 음악치료사로서 내담자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굳이 여러 심리학 이론을 끌어와 배우지 않아도 우리 엄마가 하던대로 하면 되었다. 많이 들어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게 하는 것. 일단 ‘한다’고 하면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 그것이 자식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주는 방식이었다.

어릴 때 나는 우리 부모님이 단 한번도 싸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다 커서 알고보니 밤에 우리 남매를 재워놓고 동네를 돌며 조곤조곤 싸우셨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다 들으니 목소리를 낮춰 싸울 수밖에 없으셨다고. (물론 우리가 다 커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셨다)

남동생이 초등학교때 학원에서 안 왔다고 전화 왔을때, 엄마아빠는 울며불며 시내를 뒤지며 찾다가 동네 오락실 구석에서 녀석을 발견했다. 그런데 혼내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동생은 학원을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고 한다. 다 커서 하신 말씀이 ‘생사는 확인했고 눈이 마주쳤으니 부모가 찾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한다.

믿어준다는 건 옳고그름의 가치판단으로써 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옳을 것이라 믿는다는 게 아니라, 아이의 선한 의지를 지지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 믿음은 꽤 강력하다. 나도모르게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자식으로서 우리 부모님이 너무 방목하는 것 아닌가 섭섭하기도 하고 때론 왜 부모님이 길을 이끌어주지 않는지 원망도 있었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좀 더 열성적으로 따라다니며 참견하고 서포트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보니 내가 내 스스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기다려 준 부모님이 고맙다.


결국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은 스스로 키워야 하며, 부모는 뒤에서 넘어질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일 뿐이란 걸 이제 안다. 부모는 무릎을 떠난 자식의 인간관계도 인정할 줄 알아야한다. 부모의 무차별적인 개입 보다 아이 스스로  친구나 이성, 이웃, 사제 관계 등을 스스로 설정하고 조율하도록 조력해야한다. 그래야 실패와 성공이 축적되어 관계에 있어서 자기조절력이 쌓인다.

자식도 부모의 인생이 있음을 알고 부모의 감정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서서히 마음으로 몸으로 독립해나가며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세상을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다가도 함께 할 때는 즐겁게 만나 서로를 돌보는 것이 건강한 가족인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나랑 가장 닮은 사람이자 끊을 수 없는 존재가 서로의 짐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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