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사의 고민
팬더믹이 지나고 이제 완연히 세션도 정상화되어감을 느낀다. 마스크를 벗고, 악수를 하고,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휘슬을 꺼내어 소독한다. 지난 3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까무룩 하다.
그제는 악기들을 소독하며 이제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가늠해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신체 접촉을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가? 물론 성적인 뉘앙스의 접촉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으로서 불쾌감을 주는 접촉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 악수는? 포옹은? 나름의 항목을 점검하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뜻밖의 접촉을 한 옛 세션들이 떠올랐다.
슈퍼바이저 교수님의 여러 보조치료사 중 한 명으로 폐쇄병동의 중독 남자 그룹 세션을 들어갔을 때 일이다. 그야말로 초짜 음악치료사일 때, 하루는 공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음악에 맞춰 공을 앞사람과 주고받는데, 탬포가 바뀌면 내담자들이 그걸 인지하고 천천히-또는 빠르게 주고받는 것이다. 탬포가 바뀌는 것을 현장에서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키보드로 누군가 연주해야 했고, 그게 나였다.
피아노를 썩 잘 치는 편이 아니었기에 단단히 연습해서 가야 했다. 같은 곡을 빠르게도, 느리게도, 점점 빨라지게도 쳐야 해서 긴장 바짝 하고 들어갔다. 그날은 온통 잘 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막상 연주를 했을 때 생각보다 신이 났다. 무엇보다 색색의 공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나이 든 내담자들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기 때문이다. 탬포는 내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교수님이 신호를 주어하라는 대로 치기만 하면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기 전까진.
모두가 날아다니는 공을 보고 있을 때 어떤 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50대 말쑥한 외모와 평소에 점잖은 말투에 종종 유머를 곁들인, 폐쇄병동에서는 보기 드문 유형의 인물이었다. 그의 시선이 불편했지만 종종 뚫어지게 쳐다보는 내담자가 있어 그러려니 연주에 집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손이 나의 뺨을 어루만졌다. 불쾌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악! 세션 중이 아니었다면 분명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어쩌지?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불쾌감을 내보여야 하나, 계속 웃어야 하나? 이미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래도 연주는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박자를 삐끗하기라도 하면 휙휙 날아다니는 저 공들은 균형을 잃고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씨발, 몇 가지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건 명백한 성추행 아닌가!
세션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수님께 달려가 상황을 말씀드렸다. 일렀다는 표현이 더 가깝겠다. 교수님은 바로 수간호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문제의 그 내담자와 짧은 상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철문 뒤에서 왠지 모를 감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게 교수님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만나던 여자분과 닮았더랍니다.”
말하는 뉘앙스로는 부인은 아닌 것 같고, 술집여자 중에 마음에 드는 여성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알코올중독) 그러면서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다 전했다. 그 내담자는 내게 전애인을 투사한 것이다.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한 아이가 생각난다. 7세 정도의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남자아이인데, 당시 내가 임상을 나가던 소아정신과 수간호사 선생님의 추천으로 1:1 세션을 맡게 되었다. 아이의 집에서 진행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대기업 전무였고, 남동생이 있으며 엄마는 아이를 위해 모든 시간을 쏟고 있었다. 아이는 온통 치료프로그램으로 하루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있었다. 한마디로 돈이 많은 집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가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여겨져 음악치료를 추천한 건데, 엄마는 확신이 없었고, 다른 선생님은 작업치료나 인지치료를 추천한 것에 솔깃한 상태였다.
세션 첫날, 아이는 내 가랑이 사이로 팔을 감아 대롱대롱 원숭이처럼 매달렸다. 엄마가 억지로 떼어놓으며 혼냈고, 부모에게 그러는데 오늘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하! 지금 간 보고 있구나.
세션은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이뤄졌다. 엄마는 과외 맡기듯 나에게 인도 후 문을 닫았다. 아이에게는 익숙한 공간이자 분리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둘만 있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따로 앉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안돼! 혼을 낸다면 반응이 재미있어서 더 할 것이다. 아무 반응을 하지 말자-고 그 당시 판단했던 것 같다. 아이를 대롱대롱 매단 채 악기나 음악으로 주의를 돌려보았다. 관심을 보인 악기는 피아노, 피아노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앉아야 하기에 나란히 앉았다. 집중시간이 5분도 채 안 되었지만 점차 늘려갔고, 그 외에는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를 떼어내 앉히기 바빴다.
문제행동의 해결을 모색하던 중 이 세션은 잘렸다. 7회기째 초인종을 누르니 부재중이었다. 전화를 거니 미리 말 못 해 미안하다, 다른 세션(놀이)으로 갈아탔다, 오늘까지 세션비를 더해 입금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심 아싸! 하루치 꽁으로 벌었네 하며 안도했던 거 같다. 치료환경이 너무 아이가 집중하기에 어려웠고, 케이스 자체도 8년 전 나에겐 어려웠기 때문이다. 잘린 게 오히려 후련했다.
그때, 안돼! 떨어져! 하며 훈육했어야 맞을까? 당시 판단대로 음악으로 정서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았을까. 전자라면 당장의 행동교정은 되었을망정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매달려도 될지 간을 보았을 것이다. 후자라면 시간이 그만큼 걸리고 그동안은 아이의 접촉을 거부하지 못하고 수용해야만 했을 것이다. 둘 다 괴롭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정서장애가 맞고(수간호사 판단이 맞았고) 부모가 너무 기능적 측면을 키우려고 했던 것 같다. 접촉을 갈구하는 아이에겐 부모가 넘치도록 충분한 포옹이 필요할 터인데…. 엄마랑 아이가 함께 했어야 했나? 여하튼 내가 해결하지 못한 케이스다.
그동안 10세 이하 어린이나 성인 파트를 주로 해왔던 이유도 예비되지 않는 접촉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만 돼도 키가 156 언저리인 나만 하거나 크다. 청소년들은 더 크다. 보통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고 덩치도 크다. 식욕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 사춘기 때는 성욕이 몰려오는데 작은 체구의 나는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특수학교 강당에 걸어만 가더라도 공놀이하고 탁구 치던 아이들이 몰려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물론 나쁜 뜻이 아닌 건 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거구의 아이가 벽에 머리를 찧는 상동행동을 하거나 자위행위를 하면 나는 그 상황을 통제할 힘이 없다. (물론 보조하시는 분들이 있긴 하다) 그러니까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능력이 없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머리로는 충분히 그런 행동의 원인을 알고 있으나 내가 체격적으로 급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내담자와는 일정한 사회적 거리(1m)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것이 가끔 무너질 때도 있다. 감정에 복받쳐 운다던지 하면 나도 모르게 등을 도닥일 때가 있고, 행복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와락 안길 때도 있다. 맨날 울던 36개월 애착장애 아이가 내 무릎에 기어올라 앉을 때도 있고, 멍한 상태로 있던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내 입술을 만질 때도 있다. 특히 아이들의 접촉은 거부할 수가 없다. 기분 좋은 접촉(반응)이 있고 나서는 부쩍 자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세션 내 신체 접촉은 어디까지 허용이 될까?라는 질문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지 않다. 여러 상황 속에서 신체접촉의 맥락이란 게 있다. 감정을 다룰 때는 더욱 그렇다. 내 뺨을 어루만진 그 내담자는 장면만 뚝 떼고 봤을 때 선을 넘는 행동이지만, 그 행동의 원인을 거슬러보면 투사라는 맥락이 있다. 내 다리에 매달린 그 아이도 정서적 결핍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렇다. 치료사가 역전이만 일으키지 않고 해석을 보다 정교하게 할 수 있다면 이런 고민에서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의 연장선에서 음악치료사의 일상과 직업적 생각을 담고 연재합니다. 책이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