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수정 Sep 30. 2023

고양이들

우리 집에 찾아온 녀석들

#고양이들


녀석이 찾아왔다. 아기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부터, 녀석은 저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작은 인간은 무엇인가? 평균연령 60세 덕암리에서는 못 보던 사이즈의 인간이다!


그 녀석은 노랑 줄무늬의 늘씬한 고양이였다. 며칠간 정원에 나온 나와 아기를 관찰했다. 하루는 담벼락 위에서, 하루는 꽃나무 위에서, 또 하루는 집 앞 계단에서. 호기심이 많은 녀석은 그렇게 사정거리를 좁혀 오더니 마침내 2m전방까지 진입하였다.


그렇게 얼굴을 텄을 때, 나는 놋그릇에 물을 떠서 주었다. 할짝할짝 물을 핥아먹던 녀석에게 ‘치즈’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치즈는 전에 찾아오던 옹이를 쏙 빼닮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에 호기심 많고 애교는 덤. 짐작컨대 치즈는 옹이의 손자의 손자뻘 정도 될 것이다.


치즈는 그 뒤로 자신의 루틴에 우리 집을 넣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왔다. 엄마는 굳이 물까지 줘서 찾아오게 하냐고 투덜거렸지만 생선대가리도 가끔 챙겨주다 마침내 사료 한포대를 사왔다.


배가 땃땃해지고 구경거리도 많고 아무래도 이 집이 살만 하겠다 싶었는지 친구를 데려왔다. 덩치는 배로 크고 얼굴도 크고 매섭게 생긴 회색 줄무늬 고양이였다. 인간으로 치면 장군감, 고양이과로 치면 호랭이 같았다. 우리는 이 고양이를 ‘고등어’라 부르기로 했다. 고등어는 경계가 심했으나 치즈가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머리를 부비며 고등어를 안심 시켰다.


그러니까 고등어와 치즈의 연애 코스에 우리 집이 들어간 셈이었다. 애교 많은 치즈는 인간이 쓰다듬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지만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는 온갖 귀여운 짓을 다 했다. 아기와 까꿍놀이도 하고 배를 까고 뒹굴거리기도 했다. 집 안에서 태극권을 하던 엄마를 구경하러 창 안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기도 했다. 그러다 고등어 올 시간이 되면 난간에 올라가 있다가 덩치 큰 고등어를 부비부비 핥고 매달리고 장난을 쳤다. 무덤덤한 고등어는 싫지 않은지 가만히 있다가 치즈가 선을 넘으면 하악! 했다. 그래도 치즈는 뭐가 좋은지 쪼르르 따라다닌다.


그러다 배가 부풀어 오른건 고등어였다. 고등어가 암컷, 치즈가 수컷이었다니! 이제껏 애교만점 미묘 치즈가 암컷인줄. 치즈는 고등어가 임신하자 지극 정성으로 수발을 들었다. 사료도 남겨두었다 주고 장난도 적당히 치면서.  금슬이 좋은 고양이 부부였다.


며칠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걱정했다. 간간히 치즈가 얼굴을 비췄지만 예전만치 오지 않았다. 엄마는 사료를 가득 부우며 출산을 했겠거니 했다.


그러다 짠 하고 나타난 것이다! 아기 고양이 한마리를 데리고 세 식구가 되어 나타났다. 아기 고양이는 치즈와 고등어를 아주 절묘하게 섞은 갈색 줄무늬 고양이였다. 이 고양이를 ‘고치(고등어치즈)’라 부르기로 했다.


육아는 치즈 담당이었다. 육아를 하는 아빠 고양이라니 사람보다 낫다. 고등어는 여전히 간간히 왔고, 고치와 치즈는 아예 눌러 살았다. 젖을 뗀 이후로 고등어는 거의 오지 않았다.  치즈는 와다다다 고치를 쫒아가는 척 놀아주고, 난간에 오른 법을 알려주었다. 고치는 아빠처럼 늘씬하고 귀엽고 애교많은 미묘로 자라났다.


고치가 청소년 고양이가 되었을 때쯤 어느 날엔가 치즈네 가족 세마리가 한데 어울려 와다다다 뛰어 놀았다. 왠일인가 싶어서 한참 구경하는데, 치즈와 고등어가 고치를 한참 핥아주고 치즈도 우리랑 한참 놀더니 사라졌다. 마치 마지막이라는 듯.


이 집에 고치만 남겨졌다. 치즈가 자식인 고치를 위해 동네에서 가장 안온한 집사의 집을 물려주고 떠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은 치즈를 꼭 닮은 손자냥이


작가의 이전글 눈 건강 관찰 리포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