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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Sep 30. 2023

고양이들2

맡기고 간 고양이

#고양이들2


고치는 미묘로 자라났다. 조막만한 얼굴과 쫑긋한 귀, 고등어와 치즈를 절묘하게 섞은 갈색 줄무늬 털. 게다가 우리 집에서 영양이 넘치는 사료와 특식을 먹는 덕분에  털에는 윤기가 흘렀다. 이 동네에서 가장 예쁜 고양이였다.


어디서 알고 왔는지 동네 수컷 고양이들이 줄줄이 따라다녔다. 노랑 고양이 깜장고양이 회색 고양이 집 앞 테라스에서 구애를 하는 고양이들이 늘었고, 집사인 엄마는 녀석 들을 쫓아내기 바빴다. 안돼! 고치는 아직 어리다고!


엄마 말로는 그랬다. 어느날 밤 줄기차게 구애를 하던 커다란 덩치의 회색 고양이에게 우리 고치가 당한 것(?) 같다고. 냐옹냐옹 소리가 심상치 않았는데 나가 볼 껄 그랬다고. 그렇게 아직 아기같던 고치의 배가 불러왔다. 아직 덩치도 작은 고치는 배가 불룩해지더니 사라졌다가 몇 주만에 나타났다.


세상에! 격한 출산의 고통이 있어서인지 고치는 털이 숭숭 빠지고 눈빛에 생기를 잃었다. 아기 고양이들이 어찌나 찌찌를 빨았는지 불어터졌다. 깜장고양이 네 마리 회색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치즈를 닮은 노랑 줄무늬 고양이 이렇게 여섯 마리였다.


그렇게 나와 고치는 육아를 함께했다. 고치는 서툰 첫 육아였지만 아빠냥 치즈에게 받은 사랑이 있어서 그런지 육아에 최선을 다했다. 눈빛은 영혼을 잃었지만 핥아주고 꼬리를 흔들어 장난도 받아주고 계단에 오르는 법을 알려주었다. 새끼냥들이 덩치가 커져도 젖을 빠는데 치울 힘도 없어 그대로 두었다. 새끼냥 아빠 고양이는 치즈와 달리 아주 무뚝뚝한 고양이여서 한번 휙 왔다 밥만 뺏어 먹곤 했다. 엄마는 화가 나 쫓아버렸다.


소헌이가 열이 올라 엉엉 울면 걱정이 되어 창문 안쪽을 자꾸 기웃거리는 고치였다.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지는 육아 동지였다.


시간이 흘러 성체가 되어도 엄마냥을 떠나지 않는 녀석들 때문에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나가 쫓아내버렸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훌륭한 집사이자 친정엄마였던 것이다. 치즈야! 이럴려고 고치를 여기다 맡겨두고 갔니!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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