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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Dec 28. 2023

[bookreview]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히사이시 조, 요로 다케시


한 챕터를 넘길 때는 상반된 무언가를 하며 몸과 마음을 씻어내는 편이다. 글을 쓰기 전엔 가요를 듣고, 채보를 하고나면 그림을 그리는 식이다. 집중을 요하는 일들을 마치고 나면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나의 의식이다. 한달간의 나름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 마침 주문한 책이 배달되었다.


지브리 음악감독으로 알려진 히사이사조, 일본의 뇌과학자라 소개된 요로 다케시의 대담으로 이루어진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책을 펼치는 순간 대담집이여서 드는 생각은 ‘망했다’ 잘 알아보고 살껄, 마케팅에 속아 넘어간 나를 탓해야지. 대담집은 그 대화를 지켜 본 것이 아닌 이상 그 맥락을 (뉘앙스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대화체로 적힌 활자를 다시 내 머릿속에서 재조합 하고,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도 경험상 건지는 건 그닥 없기 때문에  망했다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를테면 개론서 정도로 쓰였으면 몇 문장 안 되는 말을 길게 늘여놓았달까.


역시나 뇌과학자로서 말하는 음악에 대해 기대했건만 오히려 나이 많은 학자로서 ‘라떼는~’ 이라 이야기 하는 방식이 질렸다. 특히 앵글로섹슨족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일반화(219쪽), 아랫 세대의 모습들을 단적으로 폄하하고(251쪽), 자신의 세대에 관해서는 관대한 모습(241쪽)에 조금 실망했다랄까. 책에서 이야기한 그런 세대의 모습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고, 그렇다하더라도 뇌과학적으로 레퍼런스가 확실했다면 설득을 당했을 것 같다. 주제를 던져놓고 ‘잘 모르겠다’는 무책임함(256쪽), 대화체라 과연 이게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인가 문득문득 의심이 솟기도.


이전의 나 같으면 무신경하게 받아들였을 테지만 ‘이전세대 지식인의 색안경으로 평가하는 우리 세대에서 벗어나 우리가 스스로 세대를 진단하고 정의’해야 한다 주장한 정지우 작가의 문장들을 경험한 나로서는 좀 아쉬울 따름이다.


또 뇌과학과 생태학을 평소에 추종하고 읽어온 나에겐 지극히 얕을 수 밖에 없었다. 뇌과학자라기 보다 의사, 또는 해부학자에 가까웠다. 한국의 뇌과학자나 최재천 교수님 유투브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는게 오히려 이런 대담 형식은 유투브로 제작 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아쉽다. (뭐, 일본에서는 이들의 대화가 영상으로 이미 있을 지도)


내용적으로는 새로울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 문장들은   고민하게 만드는데, 여기에서 이 대담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히사이시: (현대음악처럼 구조에 집착한) 그런 영문 모를 음악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민족 음악이 훨씬 진정한 음악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발리의 가믈란을 들으면 그 소리가 왜 진심으로 기분 좋게 느껴질까요? 생활에 밀착된 음악이기 때문이에요. 가믈란의 형식과 분위기만 가져와서 “유구한 시간을 표현했습니다.”라고 말해봤자 ‘거짓말’이라고 느껴질 뿐이죠.(151쪽)


요로: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을 전면에 드러내면 타인은 반드시 경계하니까요. (212쪽)


사람은 존재 자체로 작품이다. (234쪽)


말과 음악에 관해서-지향성-이라는 용어로 설명(155쪽)했는데, 나 역시 말(글)과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번 <음악치유M>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 이에 관해서는 다시 글로 정리해봐야겠다.


그밖에, 자연(몸)에 관한 고민, <휴먼 카인드>로부터 발화된 ‘공감’에 관한 정의 등 생각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지점이 있었다. (언급만 되고 확장까지는 못 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아쉬움)


책의 시작과 끝에 대담자의 단독 글이 있다. 읽는 내내 이야기를 하다 말곤 해서 답답했는데, 히사이시가 나의 막힌 속을 좀 뚫어 주었다. 본인은 (아직까진)딱딱한 이론파인데 요로씨는 세상을 오래 살다보니 ‘세상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266쪽) 도인의 태도가 된 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아! 그렇다면 뇌과학자라고 홍보하지 말았어야지!


내가 이렇게 쪽수까지 적는 걸 보니 나도 결국 음악학 학자로서의 분석적 태도가 책읽기에 베인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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