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더 말해 뭐해 한강 작가님의 소설. ‘흰’
태어난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언니를 위한 씨김굿 같았다. 작가의 삶이 도대체 어때왔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될 만큼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모르고 고른 책인데 이럴수가.
솔직히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전공해왔고 지금은 연구분야이기 때문에 ‘학습된 정서’라 생각한다. 내가 수없이 만나온 또래의 사람들은 오히려 지극히 서양의 정서에 익숙해 보였다.
한강은 ‘흰’ 색깔의 이미지를 통해 언니 그리고 자신을 투영한 생과 사를 구현해낸다. ‘흰’은 마냥 하얗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친 감촉과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흰 강보와 수의는 지극히 근본적인 정서를 자극한다. 중간중간 백지로 남겨놓은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이건 무슨 의도의 편집일까?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단절 시켜 호흡을 멈추게 한다. 작가는 결국 사유 속에서 내재된 정서가 발현되었던 것일까.
글을 쓰는 이라면 무언가 던지고 싶은 물음이 있다. 소설은 그것을 아주 세밀하게 그려진 퍼즐 같다. 촌스럽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끝까지 가져가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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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음악이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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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말보다 그의 구절을 기록하고 싶다.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59쪽)”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러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