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오늘도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별 재미도 없는 금요일 티비 채널을 돌리며 시체 마냥 소파에 널브러져 초점 없는 눈으로 보다가, 스마트폰으로 뒤적뒤적 SNS를 본다. 워낙 자주 봐서 이제 별 새로운 것도 없다. 책을 읽어볼까 책장을 살펴봐도 딱히 끌리는 책이 없다. 냉장고에서 불면에 좋다는 우유를 덥혀 머그잔에 담아와서는 냄새가 비려 식을 때까지 기다린다. 시계를 아무리 뚫어져라 째려봐도 시간은 잘 가지 않는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밖이었다. 친구는 술을 어느 정도 마신 듯 그녀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워낙 시끄럽기도 했다. 술집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 자꾸 친구에게 말을 시킨다. 그녀는 딱히 친구에게 할 말도 없었다. 그저 뻔한 안부 인사 정도 한 다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 티브이는 제 스케줄을 다 마치고 검은색 화면만 깜박인다. 그녀는 리모컨으로 무심히 off버튼을 누른다.
적막하다. 문득 창 밖의 바람 소리도 나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창문 단속, 문단속을 한번 하고는 침대 속으로 쏙 들어와 버렸다. 서늘한 공기가 그녀를 에워싼다. 오던 잠도 달아날 것만 같다. 부모님 집으로 들어갈까 잠깐 생각해보지만 이내 답답해진다. 그녀는 온전히 자신의 체온으로 침대 속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 그런데...... 따뜻하게 덥혀 놓은 우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냥 들어와 버렸다. 그녀가 짧은 한숨을 쉰다. 그녀는 아마도 계산해 보았을 것이다. 우유를 가져온다 해도 이미 차가워졌을 터. 이내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침대는 고역이다. 뒤척이기를 여러 번, 살짝 잠이 들었다가도 깨기를 여러 번, 말도 안 되는 꿈을 연달아 꾸고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두통 때문에 머리를 감싸 쥐던 그녀는 콧속으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설마...... 피? 그렇다. 코피다. 그녀는 이제 웃음이 난다. 피를 질질 흘리고 웃는 웃음이란 공포스럽기 보단 애처롭다. 그녀는 안다. 자신의 몸이 불면으로 인해 노곤해질 대로 노곤해 있다는 것을. 여자가 침대 위에서 뿌리는 피가 겨우 코피라니. 그녀가 긴 한숨과 함께 왼 손으로 쓰윽 코를 훔쳤다. 새하얀 침대보 위에 새빨간 꽃이 피어났다. 얼른 침대보를 걷어 욕실로 향했다. 벌건 상사화가 핀 침대보 한 구석을 비누칠하고 박박 문질러 빨기 시작했다. 핑크빛 거품이 일더니 이내 깨끗해졌다. 그녀는 침대보를 드럼세탁기에 넣어 버린다. 밤중인데 할 수 없다. 이웃을 배려할 겨를이 없다.
한 시간 반 동안 내내 그녀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윙윙. 위잉윙. 세탁기는 나름의 법칙을 가지고 돌고 있었다. 하기야 한 방향으로만 돌면 빨래들이 베베 꼬인 꽈배기가 될 것이다. 그래도 세탁기는 일정 순서가 되면 다시 한 방향으로 돌았다. 어쩐지 그녀는 세탁기 안 빨래가 자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자리도 돌아오는 것. 매일 출근하고 돌아오면 피곤해 누군가를 만나기도 힘들지만, 결국 잠도 들 수 없다는 것. 영양의 결핍보다 마음의 결핍이 자신을 불면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뱅뱅 돌아가는 드럼 세탁기를 바라보며 깨닫고 만 것이다.
그녀는 이내 결심을 하고 만다. 이 빨래를 마친 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리라. 마침내 빨래가 끝났다. 축축해진 침대보를 정성껏 펴서 베란다 빨랫대에 힘겹게 널어본다. 녹록지 않다. 식탁의자를 놓고서야 빨래 널기는 마무리되었다. 피곤이 몰려온다. 그녀는 소파 위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는 다시 결심한다. 아침에 침대보만 씌워두고 떠나리라. 그러는 새 날이 샜다. 빨래는 보송보송 말랐다. 잠깐의 눈 붙임에도 태양은 다시 뜨고 그녀도 다시 일어났다. 퀸사이즈 침대를 모서리부터 들어 올려 침대보를 어렵게 씌운 다음 그녀는 다시 보송보송한 새침 대보 위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해가 질 때까지.
그다음부터 그녀는 불면이 찾아오면 강박적으로 이불 빨래를 한다. 아주 정성껏 드럼 세탁기 속에 넣어 버린다. 이불 빨래 용 세제도 준비했다. 바꿀 침대보가 없자 그녀는 새 침대보를 여러 개 샀다. 그리고는 이불 빨래를 한다. 지독히도 은밀하고 사적인 빨래다. 마법에 빠진 것처럼 드럼 세탁기가 세탁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끝나면 또 낑낑대며 빨래대에 빨래를 넌다. 새 침대보로 갈아 끼우고는 이불속에 쏙 들어간다. 섬유유연제 냄새가 솔솔 나는 보송한 이불속에서 그녀는 편안히 잠이 든다. 이제 당분간 불면은 없을 예정이다.
2013 by.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