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해, 나는

Duernstein- Wachau, Austria

by 구수정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등산은 우리 몸을 뜨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기가 수분을 가득 머금어 목이 타지는 않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길 군데군데 박힌 표지석이 인상적이다. 오스트리아 국기였다. 우린 조 아저씨를 따라 바하우 지역이 훤히 보인다는 뒤른스테인 성을 향해 오르는 중이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곳이다. 멜크와 크램스까지 도나우 강을 따라 형성된 이 지역은 '바하우 문화경관'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조 아저씨는 두 자그마한 동양 여자 두 명이 자신을 잘 따라오는지 종종 살피며 앞서 가고 있다. 아직 눈이 내리지 않은 겨울은 가을의 끝과 맞닿아 있다. 바짝 마른 낙엽이 종종 바스락거린다.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가 무겁게 느껴진다.


아들과 종종 이 산을 오른다는 조 아저씨는 우리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며 주말도 반납하고 온 것이다.


"보면 깜짝 놀랄걸."


아저씨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우리를 인도했다. 실은 그제 빈에 갔다가 마지막 기차를 놓쳐 'lost Wien'을 찍고 온 터였다. 우리는 호기롭게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자랑하였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뜨뜻한 뱅쇼를 홀짝홀짝 마시던 조는 그것이 마치 자기가 없어서 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에게 시련을 준 것 마냥 미안함이 섞인 한숨을 푹푹 쉬더니만 바로 오늘 등반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의 호의에 우린 피곤함을 무릅쓰고 중무장을 한 채 등반에 따라나섰더랬다.


"저 고개만 넘으면 돼."


멀찍이 앞서 가던 조가 헥헥거리며 따르는 우리에게 말했다. 그래, 다 왔다 이거지? 길의 마지막 표지석을 돌아서자마자 이게 웬걸! 하늘이 확 펼쳐졌다. 시원한 강바람이 숨으로 들어온다. 겨울 냄새가 난다. 우리 발 밑으론 아무것도 없었다. 절벽이었다. 탁 트인 절벽 아래 흐르는 도나우 강을 따라 우리가 머무는크램스가 보였다. 구부러진 강 사이로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제는 형체만 남은 뒤른스테인 성이 보인다.



"우와 좋다!"


꺄아 소리 지르며 우리는 폴짝폴짝 뛰었다.


"조심! 조심하라고!"


조 아저씨는 두 사고뭉치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아빠의 마음이랄까. 풍경에 감격해마지않는 우리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는 슬며시 미소를 보인다. 이마에 흐르는 강바람을 맞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좋다. 정말 좋다.


"봐. 깜짝 놀랐지?"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 더 좋다.


"조, 아저씨는 좋겠다. 이런 멋진 곳에 살아서."


부러움에 가득 찬 얼굴로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한데 그의 대답은 참 의외다.


"부럽긴, 난 지루한데?"


"왜? 왜왜왜왜왜?


우린 말도 안 된다며 why를 연거푸 외쳤다.


"여긴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똑같다고. 오히려 한국이 더 재미있지."


"맙소사. 그게 더 좋은 거야. 변하지 않는 것!"


이렇게 대답해 놓고, 한편으로는 이곳에 사는 사람은 그렇게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갖지 않은 것을 동경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떠나고 돌아오지.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비교적 수월하다. 조 아저씨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길이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여기부터는 그냥 굴러서 내려가면 돼!"


낙엽이 가득 쌓여 푹신푹신한 이 곳은 때굴때굴 굴러도 다칠 위험이 없었다. 몇백 년쯤 된 나무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작은 일에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경쾌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래,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냥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


@2011 Duernstein- Wachau, Aust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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