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gkok, Thiland/ hanoi, Vietnam
긴 시간 비행 후 어찌어찌하여 먼 나라 한국 뷔페 접시에 오른 망고, 얼어붙어 풍미를 잃어버린 망고 너를 볼 때마다 나는 네 고향의 더운 열기가 떠오른다. 차가워진 너를 한 입 베어 물며 이렇게 차가워서야 이건 망고가 아니다 생각했다. 차가운 망고는 너답지 않다. 아무 기운도 없이 너는 얼어 있다. 입 안의 열기로 겨우 너를 녹여내니 달큼한 촉감이 향도 없이 밀려온다. 이건 망고에 대한 기만이다. 다시 더운 나라로 가야겠다.
겨울이 있는 한국에서 열대과일은 낯설기만 하다. 용과, 두리안, 망고스틴, 구아바, 리치, 람부탄, 코코넛, 잭프루트, 스타푸르트.. 이름도 맛도 나는 모른다. 내장에서까지 땀이 흐르는 듯한 더위에 길거리에 펼쳐 놓은 과일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저 권하는 주름 깊은 할머니의 미소에 눈길이 가다가도 멈칫한다. 무슨 맛일까? 두려워하는 내게 할머니는 정성스레 까서 입에 넣어준다. 내 입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미지근한 과육은 특유의 향을 터트린다. 그리 달지 않은 과즙을 삼키고 나니 입 안이 개운해졌다. 뜨거운 열기는 좀 피할 수는 있겠다.
열대과일은 열대야와 어울렸다. 물로도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코코넛 한 모금이면 가능했다. 서울에선 그렇게 밋밋하던 코코넛 맛이 태국에선 썩 잘 어울렸다. 과일주스는 보일 때마다 사서 마셨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원하는 과일을 향해 손짓하면 그들은 즉석에서 갈아 내온다. 그렇게 많이 마셔대도 화장실은 가지 않았다. 다 어디로 간 걸까.
할머니의 가게에서 우린 고르고 고르다 결국 푸르딩딩한 바나나 한 무더기를 산다. 제일 만만한 것이 바나나다. 그나마 상상 가능한 맛. 왜 노란 바나나는 없냐며 투덜댔다. 바나나가 노오랗게 익으려면 고사라도 지내야 하는 것 아니야? 어느 세월에 바나나를 먹지? 허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바나나를 보며 당황스러웠다. 침대 가득 바나나 향이 침샘을 자극했다. 한국 마트에서 파는 바나나를 떠올렸다. 누렇다 못해 반점이 생기기 시작한. 우린 지금까지 진짜 바나나를 먹어보지 못한 거야.
한국에서 만난 멍투성이 너는 모진 고통을 짊어지고 있었다. 오느라 애썼지만 너는 향기를 잃은 채 영혼 없는 열대 과일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날씨는 너와 어울리지 않았다. 망고는 망고가 아니었고, 바나나는 바나나가 아니었다. 그래, 망고는 망고답게, 바나나답게 너를 즐기려면 결국 너의 고향 더운 열기가 필요해. 이렇게 오슬오슬 추운 날이면 뜨뜻하게 데워진 수분 가득 머금은 그 곳, 하루에 샤워를 몇번 해도 땀이 나는, 거기서 한 입 베어물면 상큼한 과즙이 터지던 네가 그립다. 그래 다시, 더운 나라로 떠날테다.
@2016 Bangkok, Thiland/hanoi, Viet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