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뜨게질

사랑한단 말 대신

by 구수정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 옷장 깊숙이 넣어둔 워머를 꺼냈다. 엄마가 예전에 직접 떠 준 핸드메이드 워머다. 우리 엄마는 나 어릴 때 손재주가 좋아서 코바늘도 잘 뜨고 웬만한 딸 옷은 직접 떠서 입혔는데 사진 보면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털모자는 물론 챙 넓은 여름 모자, 조끼, 장갑, 목도리, 아빠 스웨터, 원피스, 바지...

아주 어릴 때는 멋 모르고 입혀주는 대로 입었는데 주위에서 예쁘다고 하니까 막 자랑스럽고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중학생쯤 되니 그게 너무 싫은 거다.

"엄마 그만 좀 떠. 나도 이제 디자인된 거 사고 싶어. "
그럼 엄마는 항상 말한다.
"알았어. 이게 마지막. "

허나 그거슨 거짓말.
좀 더 커보니 엄마가 떠준 옷은 촌스러운 데다가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다. 사이즈를 잘 못 맞추는 것이다. 벙어리장갑은 너무 커서 글러브 같고 목도리는 너무 길어 미라 마냥 어깨에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따뜻하라고 앙고라 목도리를 떠 줬는데 정말 따뜻한데 감색 교복에 흰 털이 다 달라붙는다.

그래서 늘 나보다 덩치가 큰 사촌언니들 몫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색깔 배합이 나쁘지는 않았다. 언니들은 이렇게 예쁜걸 안 하고 다닌다며 나에게 뭐라고 했다. 에잇 불효녀! 중3 즈음인가 한 번은 스웨터를 떠 줬는데 무릎까지 오는 것이다. 나는 너무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 아 쫌 그만 뜨라고. 몇 개월 동안 애써서 뜨면 뭐하냐고. 크기가 안 맞는데!"
그때 엄마는 살짝 서운해했다. 하지만 화는 내지 않고 그냥 알았다고만 했다.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잘못 떴으니 할 말이 없었겠지 뭐 흥!

그러고는 정말로 한동안 안 떴다. 정말 마음이 상하신 듯,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5-6년 전쯤 워머가 유행할 때 뭔가를 뜨기 시작했다.

"나 이거 사이즈 안 맞으면 진짜 안 한다."
"알았어. 이게 마지막."

엄마는 인터넷을 뒤지고 내 목에 둘러봤다 떴다 풀었다를 반복 드디어 완성했다. 다른 것에 비하면 꽤 간단한 실뜨기인데 오래 걸렸다.

"이거 진짜 마지막. 이제 눈 아파서 못 뜨겠다."

한번 착용해 봤다. 어휴. 이번엔 작았다. 그럼 그렇지. 화장한 얼굴 안 건드리고 머리통 집어넣으려면 꽤 고생스럽다. 에휴 증말. 엄마한테 잘 쓰겠다고 하고 몇 년간 옷장에 처박아 두었다.

한동안 잊었다. 그러다 어느 추운 겨울날 슈퍼에 나가다 그놈을 뒤집어썼는데 얼추 맞는 것이다. 촘촘했던 짜임은 시간이 흘러 적당히 느슨해졌고, 멋스러워 졌다. 요새는 아주 잘 쓰고 다닌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고등학생 때 엄마의 스웨터는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 생활로 한 달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딸에게 대보고 짤 수는 없었으니 그저 눈대중과 상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 딸 이만큼은 컸겠지. 이만큼 컸겠지. 하면서. 엄마 상상처럼 나는 크지 못한 것이 함정. 아니면 떨어져 그리운 딸이 커다란 스웨터가 딱 맞을 만큼 크기를 바란 걸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랑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

진짜 이 워머는 (아직까지) 마지막이 되었다. 우리 짝꿍에게 하두 자랑했더니 그만 좀 말하라고 해서 여기다 말하련다. 흐흐 이거 우리 엄마가 짜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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