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당신

by 구수정

나의 모든 사랑은 이렇게 비가 내렸다. 늘 푸르른 여름이었다. 나의 공식적인 첫 애인은 버스에서 내 우산과 악기를 둘러매고 다른 정류장에 내려 버리는 바람에 쫒아 내리다 시작 되었다. 어떤 애인은 비가 미친듯이 쏟아내려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젖었는데도 그저 좋아 여의도 한복판에서 말 없이 우산 하나에 의지하여 서 있었다. 살짝 스치는 그의 팔근육에 설렜다. 찌릿찌릿. 어떤 날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려 잠시 차를 세우고 서로를 바라보다 입술이 따가울 정도로 오랜 시간 키스한 적이 있다. 그 키스는 타닥타닥 빗소리가 났다. 여름 나무처럼 푸르렀고 청량했다.

지금 애인과는 9년전 이맘때쯤 만났다. 사귀자고 한 다다음날 나는 뉴욕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한 달 넘게 떨어져 있어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건 어쩌면 내가 그에게 건 시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 달...기다릴수 있겠어?
그는 아침 일찍 날 데리러 왔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데 비가 억수로 왔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 세숫대야로 퍼붓는것만 같았다. 습기 때문에 에어컨이 윙윙 돌아가고 나는 으슬으슬해졌다.

"아...이렇게 비가 와서 비행기가 뜰까?"

그 때 그가 슬며시 내 손을 잡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으슬으슬한 몸이 따뜻한 차를 마신 듯 훈훈해 지면서 이완이 되었다. 전류가 흐른 듯 나는 녹아버렸다. 순간 비행기가 안 떠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창 밖은 비가 우르르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키스보다 더 또렷한 접촉이 있다.

그 후, 그 오만한 시험은 역으로 당해 유학생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한 달, 당신은 열여덟 달. 어쩐지 순순히 보내주더라니.

-

도착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이 빗소리 때문에 차 안에 누워 비 내리는 밖을 바라본다. 오늘 여름, 꽤 운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렇게 사랑은 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