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노브라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한 것은 고딩때 친구 집에 하룻밤 함께 보내면서였다.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친구는 침대 위에 나는 침대 아래 누웠다. 갑자기 그 친구가 브라를 벗어 팔 한쪽으로 휘리릭 뺀 뒤 시원하게 던져버렸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잘 때 위아래 속옷을 모두 장착한 상태에서 자야 하는 줄 알았다. 가슴에 몽우리가 지고 부풀어올라 엄마 손을 잡고 스포츠브라를 산 이래로 나는 한 번도 브라를 빼 본 적이 없었으니까.
“브라를 안 하고 자도 돼?”
“한번 빼봐. 시원햐.”
“모양이 망가지지 않아?”
머뭇거리는 내게 말했다.
“잘 때라도 빼고 자야 혈액순환이 된대. 소화도 잘 되고.”
나는 지독한 소화불량을 달고 다녔다. 그때 그 밤 당장은 못 했지만 이후로 기숙사에 돌아와 잘 때 종종 이불속에서 소심히 벗고 자곤 했다. 놀랍게도. 소화불량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다음 노브라의 경험은 뉴욕에서다. 짧은 교환학생 시기 여름의 뉴욕은 너무나도 더웠다. 더운 날씨에 브라는 땀에 차고 갑갑했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노브라 차림의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노브라여도 전혀 티 나지 않는 디자인의 옷들이 꽤 많았다. 설사 꼭지 자국이 나도 모두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브라에서 해방된 그 해 여름은 정말 천국이었다. 롱비치의 비키니는 한국 비키니처럼 꼭지(유두) 자국을 가리거나 가슴을 부풀게 만드는 뽕이 없었다. 한쪽에선 빅토리아 시크릿의 코르셋도 있지만, 노브라도 있었다. 다양한 형태였다. 몇 벌의 옷을 사서 신나게 입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입으려니 헉! 하는 옷들이었다. 왜 그럴까? 뉴욕에선 아무렇지 않았는데.
집에서는 편하게 노브라로 있어도, 사실 외출할 때는 꺼려졌다. 뭐, 종종 노브라로 그 스릴을 즐길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공연장이나 일을 하러 갈 때는 그러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젖꼭지가 비칠까 봐’였다. 슈퍼에 노브라로 나가면 남들이 내 꼭지를 알아챌까 어깨를 움츠리곤 했다. 그런 면에서 난 좀 비겁했다.
어느 날 동네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과 남학생 둘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여학생은 멀리서 봐도 새하얀 피부에 발그레한 입술을 가진, 백설공주 같은 예쁜 아이였다.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그런데 젖꼭지가 비치는 노브라였다. 그래, 한국도 시대가 바뀌어 노브라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그래도 저 여자아이 괜찮을까? 누가 성추행이라도 하면 어쩌지?’
마주 걸어오는 내내 이런 생각이 먼저 들면서 시선은 그곳을 나도 모르게 고정하는 것이 아차 싶었다. 아, 나 스스로도 온갖 사회적 가치와 편견을 장착하고 벗어나지 못했구나. 의외로 옆에 같이 가던 남학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설리가 한동안 노브라 사진을 sns에 올렸고 그것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기사화되었다. 댓글들이 어마어마했다. 미국에선 90년대 시트콤 프렌즈에서 제니퍼 애니스턴이 노브라로 출연한 것이 처음이란다. 그런데 그게 벌써 30년 전인데, 한국 정서는 아직인가.
처음에 설리가 로리타 느낌의 사진을 올렸을 때는 아니지 싶었다. f(x) 때도 너무 제멋대로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연예인과 사귈 때도 별 관심 없었다. 그러나 점차 스스로의 주관을 찾아가고, 잘못된 인식을 스스로 고쳐 나가는 것을 봤을 때 어리지만 내적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여주기 식의 삶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는 설리가 예뻤다. 대중들의 관심을 쿨하게 이용하는 듯도 했다. 특히 ‘브라는 액세서리’라 했을 때 발상의 전환이 꽤 상큼했다. 비겁한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말이었다. 왜 저런 생각을 나는 못했지? 왜 그저 나를 부정하기만 했지?
이 이십 대 초반의 여자 연예인의 영향력은 나름 긍정적이었다. 노브라를 긍정하게 되고 스스로의 몸을 돌보게 했다. 가려야만 하는, A보다는 B D가 좋다는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남성들과 그런 남성의 시선을 스스로 내면화시키는 여성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각성하게 하였다. 남성의 가슴과 여성의 가슴이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렇게 따지면 가슴이 성감대인 남자들도 있던데! 여성의 가슴도 걸을 때 자연스럽게 출렁여야 유방암, 소화불량 같은 병이 없고 건강하다.
특히 모유수유를 한참 하고 있는 나로서는 가슴에 대한 재발견을 하고 있다. 구한말 외국인이 찍은 사진 중에서 가슴을 내놓고 빨래를 하고 있는 여성들을 본 적이 있다. 사진 설명에는 ‘아기에게 젖을 빨리 물리기 위해’ 가슴을 내놓고 있다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건대 그 말은 일부 틀렸다. 수유를 하고 있는 여성의 젖꼭지는 스치기만 해도 아프기에 싸매고 있느니 내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렇게 내놓고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가슴을 성적인 색안경으로 보는 것은 결국 남성 중심으로 성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직까지, 나도 비겁하게 집에서만 노브라지만 아.... 내 딸이 컸을 때도 가슴에 갑옷을 장착해야만 할까.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면 10년 20년 후에도 그대로겠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세상에 작은 돌을 던지며 반향을 일으켰던 설리는, 마음속으로만 응원하던 설리는, 아, 그저 아깝고도 안타깝다. 아픈 상처였던 것이다. 좋은 곳으로 가길.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