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음악과 교육과정, 무엇이 문제일까
10년 전 국악계를 떠나겠다고 마음먹고 먹고살기 위해 음악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음악치료 공부를 하는 동안 꽤 행복했습니다. 모든 음악은 다 고귀하고 다 쓸모가 있더군요. 덕분에 한창 벌 때는 꽤 벌고 여러모로 정신적 충족을 주는 학문이었습니다.
초4, 초2 남자아이들 가정에 세션을 할 때였습니다. 둥글게 앉아 쉐이커를 수건돌리기 하듯 돌리며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을 했었지요. 그때 돌아가며 부르고픈 노래를 부릅니다. 많이 나오는 노래는 동요 아니면 유행가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강강술래를 부르는 겁니다.
강강술래….
“이 노래 어떻게 알았니?”
“학교에서 배웠어요.”
“정말?”
그 아이는 남생아 놀아라, 진쥐새끼, 개고리타령, 강강술래 등 향토민요를 줄줄 불렀습니다. 함께 놀이하는 동작도 내게 일러주면서요. 왜 이 노래가 생각났는지 묻자 둥글게 앉아 쉐이커가 돌아가는 모습에서 무의식적으로 강강술래를 떠올렸답니다. 그때 새삼 국악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습니다. 코다이의 “민요는 모국어”란 말이 처음 와닿더군요.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심리학’이 이런 걸 말하는구나! 나는 감격해마지않으며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초.중등 학생부터 장애아동, 심지어 성인 파트까지 내가 하는 모든 세션에서 조금씩 국악을 가지고 해왔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박사까지 거진 반평생을 ‘전공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과 마주했던 일은 나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국악을 좋아했고 음악에 편견이 없었습니다. 떠오르는 대로 민요를 흥얼거리고 무릎장단을 칩니다.
아이들은 편견이 없었다.
경기도 소재 과학고 3년여 국악 강의를 했을 때 여러모로 놀랐습니다. 인풋이 좋았던 아이들은 한 학기 수업량을 단 3주 만에 주파하는 겁니다. 삼분손익법과 피타고라스의 음 산출법 차이를 설명하면 이들은 나를 비웃으며 암산으로 소수점 여섯 자리까지 썼고 설장고 가락을 1시간 안에 다 외웠습니다. 소금을 불면 내게 악보가 틀렸다며 g=황종으로 표기된 오선보를 지적하더군요. 그 아이는 절대음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능동적이고 재미있어 한 덕분에 양질의 다양한 활동을 실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똑똑한 아이들은 억스보다는 한승석의 적벽가에 열광했고,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기로 했을 때 황병기의 음악을 들고 왔습니다. 설장구를 가르쳤더니 자기들끼리 (건전지처럼) 직렬장구, 병렬장구를 만들어 놀았습니다. 밴드동아리에서 잠비나이의 ‘소멸의 시간’을 카피하고 싶은데 해금이 없다고 해서 (내심 잘되길 바라며) 국악고 다니는 여학생을 소개해 준 적도 있습니다. 그때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국악을 해야겠다. 배워서 제대로 국악교육을 하자.
그리고 그 학교는 반강제로 잘렸는데요. 나를 뽑아준 교감선생님과 음악 교사는 “이 똑똑한 아이들이, 미래의 리더들이 우리 음악을 잘 알아야 한다”며 국악의 중요성과 전문성을 인정해준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장이 바뀌면서 교감선생님은 전근을 가시고, 그나마 저를 보호해준 음악 선생님마저 희망퇴직을 하게 된 거죠. 그때 많이들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제 학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교장은 양악과 국악을 둘 다 가르치는 것을 조건으로 다음 학기 정교사를 뽑았습니다. 국악의 전문성을 무시당한 셈이죠.
미래의 리더들이 우리 음악을 더 잘 알아야 한다.
그 새 서른다섯에 교육대학원에 갔습니다. 거기는 무슨 전쟁터 같더군요. 그쪽은 아무렇지 않지만 이쪽은 최전방 같은. 지도교수님은 이미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총알을 수십 발도 더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죽을 각오로 버티는, 싸움에는 이력이 난 최전방을 책임지는 군의 사단장 같았습니다.
일단 스물몇 명 동기 중 국악을 세부 전공하겠다는 사람은 저 포함 셋, 심지어 중등은 저 하나, 둘은 현직 초등교사였습니다. 8대 1 정도의 비율. 그게 현실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북선 1척으로 서양음악 전공을 하는 이들의 레이저와 최신식 무기를 탑재한 대 함대와 대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신입생 환영회에 앞에 앉은 선배가 내 전공을 물었습니다. 나는 (그만둔 지 오래돼 전공이라 하기 민망하여) 우물쭈물하다가 학부 전공을 말했지요. 그러자 현직 교사였던 그녀는 내 면상에 대고 “나는 국악이 너무 싫어”
음악인류학 전공을 했다는 교수가 말했습니다. “국악, 이제 없어질 음악을 뭐하러 하나요?”
제(祭, 종묘제례 같은 제사)와 재(齋, 불교에서 올리는 재)를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말에 “국악 하는 사람들은 뭐 중요하지도 않은데 왜 이리 한자를 지적해요? 그게 그거지. ” 순간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당연히 한자는 뜻글자고 잘못 쓰면 의미가 달라지는데 학문을 했다는 사람이 할 말인가? 알파벳 오타와 같은 급은 아니지 않나? 상대의 언어를 존중하지 않은 사람이 학자인가? 그러다 슬픔이 밀려오더군요. 아, 이러니까 쌈닭이 되는구나…. 여기서 주먹을 날리면 또 그렇게 말하겠지. “역시 국악 하는 애들은 생각이 편협해. 자기주장만 하고.”
국악? 내버려두면 없어질 음악 뭐하러 하나?
2022 음악과 교육과정 토론회에서 비슷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당장 국악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국악용어를 (서양) 음악 용어와 합쳐서 공통으로 쓰자는데 뭐가 문제냐?” 그들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음악어법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박자’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박자’ 하면 떠오르는 게…네, 그렇습니다. 4분의 3박자, 8분의 6박자. 그런데 국악은 박자의 개념은 없습니다. 박의 개념만 있을 뿐이죠. 4분의 4박자 따위의 박자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식 박의 개념입니다. 서양음악의 개념은 국악의 음악적 인식과는 딱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피아노 학원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개념이 바로 사과 쪼개기입니다. 사과를 몇 등분하느냐 따라서 4등분 8 등분하고 그것이 몇 개 모였나 하는 게 바로 ‘분할론’입니다. 그러나 우리 전통음악은 쪼개는 개념이 없습니다. 모이는 개념이죠. 사과 네 개 굿거리, 큰 사과 작은 사과 모인 엇모리, 이것이 이보형의 ‘집합론’입니다. 쪼개서 나누는 ‘분박’이 아니라 작은 박이 모이는 ‘소박’! 물론 이보형 선생님이 우리 음악의 개념이 서양 음악화되는 것에 반하여 전통적인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장단론을 세우신 것이지요.
우리의 박에 대한 개념은 장단의 단위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서양음악 체계로 따지면 장단은 해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4박인 굿거리를 서양식으로 하자면 8분의 12박자가 됩니다. 5.8.8.5.8 박을 가진 시조를 서양식으로 하면 8분의 5 더하기 8분의 8 더하기 8분의 8 더하기 8분의 5 더하기 8분의 8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쟁점입니다. 우리 음악을 우리의 언어로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뜻이 곡해되거나 쓸데없이 복잡해지는 것. 그런데 이거 낯익지 않습니까? 우리말을 못쓰게 하던 일제 강점기와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우리가 갖고 있던 음악의 고유한 개념을 2022 음악과 교육과정이라는 제도로 우리 정신을 식민지화하는 것입니다. 더 나쁜 건 뭔 줄 아십니까?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 손으로 서양음악적 사고에 식민지 지배를 받는 멍청한 짓을 하려 한다는 것이죠.
쪼개진 사과와 온전한 사과
문화식민지화, 멍청한 짓은 이제 그만
우리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외국의 언어를 빌어야 합니다. 박만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선율(가락)은 어휴…. 더 답답합니다. 현재 교과서에 가락 선보로 적힌 민요 판소리를 오선보로 적는 멍청한 짓을 또 해야 합니다. 그럼 어떤 학생은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죠. “선생님, 악보가 틀렸어요!” 국악의 고유한 음악 체제를 뒤흔드는 겁니다. 그러기에 그 바탕을 만들어주는 교육과정이 중요합니다.
2022음악과 교육과정 토론회에서 그러더군요. 대중음악도 지분을 달라. 재즈도 지분을 달라. 국악 너무 많다. 그런데 다시 ‘박’의 개념만 다시 가져와봅니다. 대중음악이 4/4박자를 쓰던가요. 3소박4박이라는 개념을 쓰던가요? 대중음악, 재즈 등등의 음악은 서유럽 클래식 음악의 기본 개념과 일치합니다. 왜죠? 갈래가 같으니까요. 음악어법이 같습니다. 그러나 국악은 다릅니다. 이건 밥그릇 싸움이 아닙니다. 교과서에 몇 곡 싣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음악어법이 다른 (재즈, 클래식, 대중음악 등의) 서양음악과 국악의 체계를 어떤 성취기준으로 잡느냐, 음악 요소를 각 음악 어법에 맞게 잘 제시하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냥 국악은 대한민국 초중등 음악 교육과정에서 기본값입니다.
서양음악과 국악, 전혀 다른 음악 언어
아이들은 이 개념을 어려워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네 박을 다시 쪼개 열두 개로 세는 게 네 박보다 쉬울까요? 정간보를 어려워한다고요? 칸에 고작 다섯 음 있는 것이 어려울까요. 국악을 다시 오선 위로 옮겨 보표와 조표, 그리고 12개의 음높이를 인지하여야 하는 오선보를 어려워할까요. 정간보의 다섯 율명은 그저 기호체계입니다. 아기들이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자장’ 우리의 향토민요 자장가를 편안해할까요. 브람스의 자장가를 좋아할까요.
슬프게도 저는 얼마 전까지 쪼개진 사과(분할론)가 더 익숙했습니다. 저 역시도 초중등교육에서 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본인들이 국악 개념을 (못 배워서) 잘 모른다 하여 틀린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또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배울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념이 다르니 용어도 다르고 성취 기준도 달라야 하는 겁니다.
민요는 모국어라는 코다이의 이론이 음악교육학 개론서 첫머리에 나옵니다. 우리의 음악아(music child)는 이미 국악으로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국가, 민족 단위의 집단 무의식이 우리의 세포 안에 DNA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세포 속에도요.
음악 하는 사람이 해외에 나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네 나라 음악은 무엇이냐?”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국악 하는 사람만 들을까요? 가슴에 손을 얹고 당신의 유학시절을 떠올려보세요. 그럼 겨우 아리랑을 입밖에 내었을 것입니다. 축구 응원할 때 응원가로 무슨 곡을 부를 것 같나요? 요새 잘 나가는 k-pop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신의 영혼이 굿거리장단에 반응합니다. 지켜야 될 음악이 아닙니다. 그냥 우리 자체 ‘아이덴티티’입니다.
그런데 서양식 음악 어법을 사용하고 교육받다 보면 영혼부터 서양식 사고로 개조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을 못 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언어로 우리 음악을 다 말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남의 언어를 빌어서 써야 할까요.
패싱게임을 하면서 강강술래를 불렀던 초4 남자아이는 국악교육이 어느 정도 잘 이루어지던 환경이었겠지요. 교생실습 때 ‘시조 넘나 좋은 것’이라고 써서 그림을 그려준 중3 아이는 국악이 지루했을까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국악에 대한 경계심이 없습니다. 양질의 음악을 제공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고 그에 대한 기준을 정해주는 것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입니다. 국악은 여러 음악 장르 중 하나가 아니라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신이자 기본값입니다. 국가가 그리고 대한민국에 소속된 어른이라면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주길 바랍니다.
공감하셨다면 서명 부탁드립니다.
http://www.petition.co.kr/v/302101310461?fbclid=IwAR2ZOajqUc2rnFEr31wggdDu2y4tw8E69BbRUjDQCarzj84GYilcu8WrC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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