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이 Jan 08. 2021

공무원이 뭐라고...(12)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지는 않은 곳에 가고 싶어서...

‘경기교복’이라고 해서 무슨 교복인가 했다. 기피부서의 앞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민원이 너무 많아서 초과근무가 일상인 곳, 일은 많이 하는데 선천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곳 등이 그 대상이다.


1년에 2번 부서이동 기회가 있는데, 저마다 좋은 부서로 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있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2년 제한이 걸려 있어서 한 부서에 2년 정도 있어야 다른 부서로 이동가능하다. 모든 일에 예외가 있듯 부서이동 기준에도 역시 예외가 있다. 고충인사를 신청하는 것이다.  보통 고충인사를 신청하려면 몸이 건강상 문제나 가족돌봄 문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외에 인간관계상 문제도 포함된다. 때로는 근평 문제때문에 고충인사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예외가 참 많다.....


내가 만약 승진을 하고 싶다면 승진을 위한 근평이 부여되는 자리로 가고 싶을 것이다. 막 승진했다면 그동안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심정으로 민원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본인 업무만 챙기면 되는 자리로 가고 싶을 것이다. 나의 필요에 따라 선호부서와 기피부서가 구분되어진다. 내가 선호하는 부서는 남도 선호하는 것이 문제이다. 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승진을 원하는 사람은 실국본부의 주무과를 1지망으로 적어낸다. 막 승진한 사람이나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업소를 1지망으로 적어내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승진가능성이 높은 부서를 택할 가능성도 있는데, 당장은 아니라도 다음 순번으로 근평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그 자리도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내가 승진자리를 찾는다거나 가고 싶은 부서를 지원한다고 해서 모두 갈 수 있다면 그 조직 모두 매우 행복해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난 직원은 서로 모셔가려고 경쟁한다.


인기있는 부서가 직원을 정하고 나면 직원 내신에 실패한 부서들은 실국으로 발령나는 직원들을 기다린다. 실국으로 발령이 되고 나면 국과장 회의에서 과 배치를 결정하게 된다. 실국본부의 주무과 주무팀장과 국주임은 인사철에 매우 바쁘다. 나가는 인원에 맞게 직원을 모셔와야 하기 때문에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통화를 하고 인맥을 동원하여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오려는 노력을 한다. 될 수 있으면 함께 일하기 좋은 직원을 모셔오려고 하는 것이다. 근평(수)를 줄 수 있는 경우라면 쉽게 직원을 구할 수 있지만, 우리 과와 같이 인기가 없는 기피부서이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9년 전에 나는 직원을 모셔오기 위해서 사전보고하지 않고 올린 연가 바로 결재하기를 시전했다. 휴가를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언제 휴가를 가겠다고 보고를 하고 때에 따라서는 휴가일정을 대직자와 의논하여 조율하는 것은 필요하다.


한 직원은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갑자기 휴가를 갔다. 원래 행사를 앞두고 있으면 행사를 치른 후 휴가를 가지 않나? 암튼 그 직원은 연초부터 정해놓았다고 하면서 가버렸다. 행사 준비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 직원은 모든 준비를 끝내고 갔다고 할 수도 있겠다. 행사란 끊임없이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행사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준비가 잘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휴가에 대해 눈치조차 주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직원들로부터 원망을 받기는 하였으나. 과장이 한 마디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다행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대신 처리했다.


주말에까지 출근하는 국장이 있었는데, 그 때의 문화는 국장이 출근하면 다들 눈치보는 분위기여서 과장이 나오고 과장이 나오니 팀장이 나오고 윗 분들 챙기러 직원들이 출근해서 대기하는 풍경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다. 나는 국장에게 주말은 쉬라고 있는 것이니 나는 쉬겠다고 공언했다. 한번 큰소리 치고 주말 출근을 안한 것은 아니고 틈이 날때마다 우리 과는 주말 휴식도 없으면 그나마 있는 직원들도 나갈 수 있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세뇌하듯이. 결국 국장은 그래도 긴급한 일이 있을 때는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말로 양해해줬다.


요즘 분위기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어쩌다 주말에 사무실 나와보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직원들이 정말 별로 없다.

우리 부서에 오고 싶지 않았는데 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화내며 말하는 직원도 있었다. 업무가 없는 것을 만들어서 해야하고 성과도 잘 나지 않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그런 경우라면 오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평생 지내야 하는 조직사회에서 내 상사는 다른 간부들과의 네트워크도 없는 계약직이라면 더 오고 싶지 않음은 당연하다. 과장이 승진자리로 못간다면 선호부서나 편한 자리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계약직이라 친한 간부들이 없으니 애초에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맞는 생각이다. 어떤 과장은 바로 밑 직원이 과장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사태까지도 있었는데, 다행히 나는 그런 불행한 사태를 조기졸업했다. 내가 하루아침에 리더십을 막 발휘해서 직원들이 잘 따랐으면 참 좋았겠지만.......그 직원이 더 좋은 자리를 찾아 이동했기 때문이다.


사업소는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한번은 해당 본부장이 내신을 원하는 직원들 중에 친분 등을 이용해 부탁하는 사람들은 제외했다고 하고 정말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선별해서 뽑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우스개소리로 아무리 높은 분 빽이라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 했다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심 그 분이 공정하구나 싶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기피부서이니 우리 부서에 온 직원은 잘 가르쳐서 선호부서에서 스카웃해 갈 정도로 키워보자 생각했다. 능력만 키울 것이 아니라 홍보도 많이 하자 싶었다. 실국장이나 과장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부서에 00직원이라고 있는데 혹시 아세요?” 라고 운을 떼고 성실하고 성격좋고 .... 할 수 있는 칭찬은 다 모아서 홍보했다. 요즘 영끌이라고 하던데 지금 생각하니 나도 직원 홍보에 영끌했구나. 심지어 크리스마스 카드를 쓸 때에도 “우리 직원 중에 누가 있는데 이런 일을 열심히 잘 했어요.” 라고 쓰기도 했다. 손글씨 카드로.


다행히 우리 부서를 스쳐간 직원들은 거의 본인들이 원하는 부서로 이동해 갔고, 승진운도 있어서 종종 내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무원이 뭐라고...(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