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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이 Jan 09. 2021

공무원이 뭐라고...(13)

감사 표현은 손글씨로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공무원 조직에 들어와서 더욱 뼈저리게 실감한다. 심지어 그 인맥이라는 것이 없다. 이 조직 전체를 통틀어 내가 나온 대학출신은 내가 아는 한 딱 1명이었다. 이 조직이 본청만 4천명이 넘는데... 


처음 조직에 들어와서 팀장 손에 이끌려 다른 부서의 과장들에게 인사를 갔다. 팀장 제안으로 민원이 주로 많은 부서들을 중심으로 과장 30% 정도 만났는데, 팀장이 그만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면식도 없는 과장들을 더구나 계약직에게 적대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이는 과장들을 만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어떤 과장은 매우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어떤 과장은 갈등조정하면 내가 아주 잘 안다면서 과거에 해결했던 사례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과장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돌아가는 사정을 조금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게 별로 기대하는 것은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조직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워보였는지 과장으로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조언해 주기도 했다.


내가 만난 과장들은 계약직이 들어와서 인사를 다닌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인 경우는 모두 기억한다. 내게 조언을 해 준 팀장도 그 점을 고려한 것은 아닐까. 무언가 업무를 진행하려고 할 때 행정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팀워크가 중요한데 내 부서 내에서만의 팀워크 뿐 아니라 다른 부서의 협력을 받아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소위 '안면행정'이라고 얼굴을 익혀 두면 전화만으로도 가능한 업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장들만 만난 것은 아니다. 팀장들도 만났다. 우리 부서 팀장이 모임을 할 때 알아두면 좋을 거라고 같이 가자고 하면 언제든지 따라갔다. 여기 직원들은 모임이 참 많다. 동호회 모임도 많지만 발령받은 부서마다 모임을 한다. 예를 들면 기획과 모임, 교통과 모임 등 부서명으로 된 모임도 있고 입직 동기, 승진 동기, 직렬 동기 등 모임도 있다. 그러한 모임들을 모두 다 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20년 이상 공직에 있는 팀장들의 모임은 정말 많았다. 


그러한 모임들에 나가서 팀장들은 새로 온 과장이야기를 했을터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이야기했을테니 각자 감상이 달랐을 것이다. 입직한지 2년 여가 넘은 어느 날 모임에서 어떤 팀장이 그동안 과장님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말을 했다. 소문은 대부분 믿을 것이 못된다는 말도 했다. 진작 만나봤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이 조직에서 조금은 나를 받아들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새로운 조직에 와서 낯설고 힘든 마음 상태가 되는 것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즈음 나는 신규라는 이름이 붙으면 누구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규직원이 오면 아무도 일을 주지 않는다. 조직 분위기를 먼저 익히라는 의미이다. 가끔 자유게시판에 '신규인데 할 일이 없어요.' 라는 글이 올라온다. 댓글이 올라오는데 대부분 격려하는 말들이다. '부서에서 발간하는 백서를 읽어보세요.' '공문서들을 읽어보면 업무를 파악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이런 말도 올라오지만 '그 때가 제일 좋은 때에요. 좀 지나면 엄청 바빠지니 지금을 즐기세요.' 이런 조언도 있다. 


나는 전문직으로 들어와서 오자마자 업무를 시작했기 때문에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신규라는 의미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은 다른 부서와 협력할 일이 많기 때문에 오자마자 처음부터 인사를 다녔고 그 덕분에 과장들에게 조직관리 팁을 배우기도 했다. 누구나 처음 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낯설어 하고 경계하지 않을까. 평판을 익히 들어 알지만 나와 같이 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면 익숙해 질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루 하루 지내면서 내게 아는 척 해준 사람, 적극 도와준 사람, 내가 하는 일을 믿어준 사람, 칭찬해 준 사람, 격려해 준 사람, 모임에 불러준 사람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 고마움을 물질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감사함이 컸기에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를 빌어 손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올해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첫 해에는 100명에게 카드를 썼다. 그 다음해에는 150명에게 썼다. 연말마다 감사카드를 썼는데, 한 해동안 협력해서 일을 했던 사업부서의 담당, 팀장에게 주로 썼고 그 일에 자문을 해준 전문가들이나 단체 사람들에게도 썼다. 시에서 추진하는 핵심사업에 참여했을 때에는 회의에서 만났던 분들에게도 감사편지를 썼다. 나로서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낯간지러울 만한 그런 말을 편지에 썼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제 복까지 가져가세요. 행운이 늘 앞에서 기다리기를 기원합니다.' 


대부분은 문자로 카드 잘 받았다고 고맙다고 했다. 


나와 함께 일했다가 다른 부서로 이동한 직원들에게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한 직원은 내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가 힘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내가 감사해 하는 마음이 잘 전달되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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