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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이 Feb 18. 2022

공무원이 뭐라고…(24)

열정페이와 사명감

충심을 다해서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하고 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때가 있었다. 갑의 추천권이 공공기관이나 민간기관 등 어느 분야 기관이든지 통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지금은 불법이기도 하고 잘못하면 공정성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기 쉽다.) 나는 행정학 전공인데, 행정학 분야가 굉장히 범위가 넓은 것 같지만, 한 두 사람을 거치면 금방 아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어딘가 자리를 얻으려면 밉보이면 안된다는 조언이 있기도 했다. 어떤 분야든 그러할 것이다. 을의 위치에 있는 직원에게 갑인 상사가 협박하는 말이 있는데, “이 바닥 좁아.”


바닥이 좁다고 열정을 요구하나


요즘은 일자리가 많이 없기도 하고 퀄리티가 보장되는 일자리는 더욱 귀하기도 해서 갑의 추천이 있다고 해도 추천만 있을 뿐 심사의 과정이 엄격한 공공기관이나 기업에는 우리같은 일반인은 거져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그런데 아직도 노동의 대가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열정페이를 강요한다.  나의 노동은 고되었으나 그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다. 축약하면 ‘노동의 착취’이다. 몇 십년전 일이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다. 전공분야별로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등등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야에서는 ‘조교를 시킨다.’가 있었다. 조교는 만능열쇠, 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하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조교’를 이야기하니 옛날 생각이 난다. 늦은 나이에 박사과정에 들어가 10살 이상 어린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같이 ‘연구실 조교’를 한 적이 있다. 어느날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교수가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반말로 욕을 하는데, 내가 또 반응이 느린 탓에 전화를 끊고나서 한참뒤에야 분노라는 것이 올라왔다. 알고보니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일단 전화해서 가만 안두겠다는 둥의 폭언을 한 것이다. 다른 교수들은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해도 참으라고 했다. 어딘가 일자리를 구할 때 면접심사위원으로 만날 수도 있다면서. 내 상사인 교수가 그 어린 교수에게 너보다 나이많고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성격이 더럽다고…) 한 이후 내게 사과전화가 왔다. 그런데도 난 그 교수만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교수라는 직위를 가지고 세상 모든 조교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조교들의 노동을 얼마나 가치없게 보았으면 그렇게 막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싶어서이다. (그 때의 조교시절 함께 했던 조교들은 이제 중견의 교수가 되어, 기여도에 따른 배분을 추구하고 있다. 옛날 생각을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곧 돈임에도, 아직도 아직도 “인건비는 얼마인데요?” 라고 물어보면 뒤돌아서서 돈만 바라네. 요즘애들은 열정이 없어. 라고 한다. 나는 인건비를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인건비’는 얼마 책정했어요? 라고 물어본다. 물론 일의 가치가 금액으로 결정되지는 않으므로 돈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일을 받고, 상대방이 내 가치를 폄하하는 것으로 느껴지면 일을 거절한다.


내가 받을 돈이 얼마인지 내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계산해 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홀대하는 사람이다. 물론 나의 가치는 상대방이 정하는 것이지만, 내 스스로 나의 가치에 대한 기준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돈이 좋아도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것인지와 같은 기준이다.


공직에서의 사명감


공직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는 법규정에 정해져 있다. 일반기업의 70-80% 정도라고 생각되는데, 처음 공직에 들어와서 월급명세서를 받았는데 어머니가 그만두라고 하셨었다. ㅎㅎㅎ 나만 그런 생각을 하나? 공직사회에 들어와서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하는데 너무 돈을 따지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민원을 받아보면 그런 생각이 없어지는데, 실제로 열심히 죽어라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었는데 월급도 기대보다 적고 온갖 민원에 시달리고 하다가 그만두는 직원들도 자주 보게 된다. 사명감이 어쩌면 열정페이와 닮아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사명감만으로 공직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열정만으로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처럼…


공무원은 국가의 긴급상황 시 각종 임무에 차출되고 있는데 특히 요즘 코로나시국에서는 생활치료센터 등에 동원이 된다. 생활치료센터에 차출되어 확진자들의 민원을 받아보면 차라리 내 본연의 업무로 빨리 복귀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한다. 공무원을 욕받이로 생각하고 온갖 세상 모든 욕을 퍼붓기도 하고 요구의 정도가 높아서(도시락 메뉴 변경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요청을 들어드리기 어렵다.’고 하면 ‘어려운 것이지 안되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요구한대로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답을 드리라고 한다. ‘어쩌죠…말씀하시는 내용은 규정상 불가입니다.’


우리나라는 공공서비스가 매우 좋다고 해야하나, 저자세라고 해야하나. 한번은 어떤 민원인이, “외국에서는 안그런데 여기서는… “ 이라고 한다. “어머~~ 외국에서는 행정서비스가 많이 느리잖아요. 그에 비하면 한국은 총알이죠.” 외국에서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왜 한국에만 오면 빨리빨리를 요구하시는지… 한국에서도 외국인으로 사시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을 잠깐 하기도 한다.


각종 민원사항으로 인하여 사명감은 어딘가로 날아가버리고 지친 영혼을 끌고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 집으로 간다.


내일은 내일의 사명감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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