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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Apr 02. 2024

행복의 씨앗

모리에게 쓰는 세 번째 편지

  사랑하는 내 딸 모리야, 안녕?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니?

  엄마는 너를 뱃속에 품은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매일 즐거운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뱃속의 아기는 엄마와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던데, 엄마의 노력만큼 너도 뱃속에서 이 즐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으려나? 네가 엄마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엄마는 화를 내려다가도, 침울해지려다가도 그 부정적인 감정을 맑은 눈으로 전부 지켜보고 있을 네가 떠올라 멈칫하게 돼.

 

  “모리야, 방금 엄마 화낸 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이런 식으로 네게 변명을 하고 싶어 져. 그리고 얼렁뚱땅 그 마음들을 마무리 짓고 얼른 즐거운 일을 생각하곤 해. 물론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 ‘에라 모르겠다’ 감정을 분출할 때도 있지만 네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그 감정에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깊게 파고들어 곱씹으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한단다. 가능한 한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평소에 무덤덤하게 지나갔던 일상의 사소한 일들 속에 즐거움을 찾아보려 하고 있어. 심각해지지 않으려 일부러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고 발걸음에 무게를 싣지 않고 가볍게 통통. 재밌는 일엔 더 크게 깔깔 웃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더 크게 마음에 담으려 눈은 크게, 입도 크게 “우와”. 엄마와 네가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이 열 달의 시간 동안 지금까지 엄마가 살면서 느꼈던 모든 행복의 마음을 가득 담아 전해주려 애쓰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네 마음에 잘 가닿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수학문제를 푼다거나 영어공부를 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태교는 못하더라도, 엄마는 이 시간 동안 네가 가장 건강한 행복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어. 곧 싹을 틔울 수 있을 정도로 싱싱한, 가장 초록의 싹을 품은 행복의 씨앗을. 이 씨앗이 잎이 풍성한 나무가 될지, 시들어버릴지는 앞으로 네가 만들어가겠지만 지금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장 싱싱하고 튼튼한 씨앗을 주는 것이야. 그리고 네가 태어나면 이 씨앗에 어떻게 물을 주고 햇살을 주며 가꾸어나가는지 알려줄게.


  어떤 이는 씨앗을 주더라도 싹을 틔우는 법을 알려주지 않거나 잘못 알려주기도 해. 그래서 싹을 틔우지 못하기도 하지. 마음의 빈 땅 위엔 황량함뿐이겠지만, 포기하긴 일러. 어쨌든 마음 안에 씨앗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단다. 하지만 때론 누군가에겐 그 씨앗조차 없을 때도 있단다. 씨앗조차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건 너무 슬픈 일일 거야.


  엄마는 네가 이 행복의 나무를 잘 가꾸어갈 수 있게 네 마음 안에 꼭 행복의 씨앗을 심어줄게. 그리고 잘 가꾸는 방법을 알려줄게. 그 후에 어떻게 가꾸어나갈지는 네 몫이야. 일단 싹을 틔우고 어느 정도 뿌리내릴 때까지가 힘들지. 그다음에 키워나가는 것은 혼자 하기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그래도 꾸준히 자주 들여다봐주고 살펴봐주고 때에 맞춰 햇살과 물을 주어야 해.


  하지만 살다 보면 나무를 돌보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많아 나무 돌보기에 소홀해지는 날들도 있을 거야. 마음에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들도, 심하게 가뭄이 드는 날들도 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자리를 잡은 나무는 쉽게 무너지지 않아. 흔들리더라도 뿌리 뽑히지 않아. 시들더라도 그 안에 조금의 물기를 머금고 있어. 그리고 그런 시련은 오히려 나무를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해. 언제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잘 돌보아준다면 마침내 큰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그날이 오면, 그중에서 가장 초록의 싹을 품은 건강한 씨앗을 골라 너의 아이에게 심어주렴. 그때는 너도 알게 되겠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나무를 잘 길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너의 소중한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 행복의 씨앗을 심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 모리야, 오늘도 뱃속에서 즐거운 하루 보내렴. 엄마가 심어준 행복의 씨앗을 꼭 껴안고.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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