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잘려 나간 엄지 손가락
내 왼손 엄지 손가락이 거의 잘려 나갔다. 두 달 전 대만 여행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요일이었을뿐더러 대만 설인 춘절 기간이라 응급실에 갈 수밖에 없었다. 전날 대만에 도착했고, 여행 둘째 날 점심때쯤이었다. 호스텔 공용 주방에서 스무디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야채를 손질했다. 혼자 있는 익숙한 집이 아니라 다양한 여행객들이 보이는 낯선 곳이다 보니 내 눈동자는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빴던 것 같다.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지만, 손으로는 관성적으로 당근을 썰었다.
눈이 당근을 떠난 사이 내 손가락까지 자르고 말았다. 내 살점은 거의 떨어져 나가 마치 밥솥 뚜껑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이 하얘졌고 "도와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공포에 질린 난 "도와달라"는 말 대신 고장 난 로봇처럼 "I think..."만 되풀이했다. '구급차를 불러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I think..." 두 단어 외에는 아무 말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주방엔 내가 흘린 피가 낭자했다. '내 손가락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호스텔 직원과 여행객들 등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나만큼 놀라거나 불편해하지 않았고 피가 낭자한 걸 보고도 꽤나 담담했다. 짜증이 났다. 빨리 처치를 해야 손가락이 덜 잘못될 것 같은데, 그들의 태평한 태도는 나와는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남 일이어서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응급실 가는 택시에 올라타려던 순간, 손가락이 썰렸던 순간에 가장 먼저 내게 주목했던 여행객들 중 한 명이 자기가 중국어와 영어를 둘 다 할 수 있다며 통역과 도움이 필요하다면 병원에 동행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도움을 수락했다. 처음 보는 사이에서 굉장히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극도로 혼란스럽고 우울했고, 2분 걸릴 거라던 응급실 가는 길이 마치 그 5배인 10분처럼 느껴졌다. 응급실에 함께 가는 여행객을 비롯해 호스텔 주방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평온한 태도가 더 답답하게 느껴지고 짜증이 났다. 날씨가 화창하고 맑은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응급실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이름을 물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지아(Yee Jia), 싱가포르 사람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이지아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의 보호자가 돼 줬다. 대신 접수를 해 주고, 모든 통역을 도맡았다. 그녀는 웃으며 "엄마한테 전화해서 다쳤다고 이야기하고 싶냐"고 물었다. 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엄마와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대만 여행은 한국에 있으면 가족들을 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설 연휴를 피해 온 도피였다. 내가 처한 이 상황을 한국에 알릴 사람이 없다고 느껴져 서럽고 슬펐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뗀 뒤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슬며시 자리를 피해 줬다. 날 배려해서 비켜준 것 같았다. 얼마 뒤 간호사가 와서 혈압을 잰 뒤 "지혈을 해야 한다"며 손가락을 꽉 눌렀다.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주사를 맞는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엉엉 울었다. 두려움과 조마조마한 마음이 최고조에 달했던 순간이었다.
*총 3편으로 이뤄진 대만 여행기
<대만에서 잘려나간 손가락, 선물이 되다>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