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 듣기보다 한번 보는 것
Design Thinking(디자인싱킹), 재미있는 문제 해결 방법론이고, 모두가 찾는 핫! 한 트렌드다.
디자인 싱킹을 달리 표현하면 "문제 해결을 디자이너처럼"인데, 디자이너처럼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반면, 디자이너들은 뭐가 특별하냐고 의문을 던진다. 모두에게 대체 뭐냐? 는 질문 폭풍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디자인 싱킹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이 폭주한다.
제품을 만드는 상품기획 프로세스를 해 본 사람들은 이 디자인 싱킹이란 것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계속 고민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책과 강의에서 이야기하는 어려운 과정과 복잡한 전제를 다 빼고 아래와 같이 이해하면 어떨까 싶다. 강한 컨셉이란 가장 쉽게 이해되고, 몸에 바로 익는다. 일단 핵심을 단순화해서 이해한 뒤, 변주나 예외를 살펴가는 편이 효과적인 것 같다.
문제와 해결의 전 과정과 결과물을 visualize 한다
먼저, 디자인은 무엇인가? 디자이너는 뭐 하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디자인이란 특정 목적을 충족시키는 그림,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비주얼 작업의 결과물이다. 디자이너라는 직업 또는 역할은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만 이 역시 극히 단순화해 보면 특정한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비주얼 제안물(그림)을 만드는 사람이다. 어떤 특정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비주얼 또는 비주얼적 제작물을 만든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 문제 해결이고, 그 방식의 핵심은 'visual'이다.
비주얼로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한다? 가능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인포그래픽을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 세계 나라들의 인구수를 비교한다고 할 때, 수 백만, 수 천만 또는 수 억이라는 숫자로 비교하면 분명 어떤 수가 더 크고, 작음을 이해한다. 그런데 숫자는 개념적이다. 얼마나 더 크다라는 것이 '감'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만약 숫자의 크기에 따라 커지고 작아지는 인포그래픽을 사용한다면, 나라별 인구의 차이를 아주 금방 알 수 있고, 숫자의 대소 역시 선명하게 드러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비주얼의 시대에 살고 있고, 이미지의 힘을 쉴 새 없이 강조하고 있다. 길고 복잡한 역사책도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이해도 쉽고, 암기하기도 낫다. 아이들의 학습과제는 모두 그림 일색이다. 글로 쓴 매뉴얼보다 동영상 사용법을 보고 복잡한 기기를 조작하거나, 고칠 수 있다. 모두 비주얼의 힘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다. 하물며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옛말씀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디자인 싱킹은 문제와 해결의 과정을 visualize 한다는 프로세스적 특별함, 특징이 있는 방법론이다.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까울 만큼.
내가 고객이다
이 방법의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사용하기에 어떠한 것이 아니라 "내가(고객) 사용하는데 어떻더라"는 전제. 반드시 소비자의 신발을 신어야 한다. 내 문제여야 절박하고 실질적으로 풀린다. 남의 문제는 아무리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해한다 해도 결국 남의 문제일 뿐인 것. 스스로 불편이나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진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사실 소비자의 신발을 억지로 신어야 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소비자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타자화를 한다. 그래서 탁상공론이 많고, 멋진 기획서는 그대로 멋지기만 하고 현실화되지 않는다.
나 역시 상품기획자이자 논리적 문제해결 방법을 사용할 때는 타자화시킨 소비자들을 위해 뭘 할까 라고 고민했다. 디자인을 하면서 그 태도가 "난 이게 불편하던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문제점을 나름대로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대체로 디자이너들은 문제를 개인화하고 직관적으로 바라본다. 내가 써보니 어떻고, 뭐가 마음에 안 들고, 이렇게 하는 게 더 예쁘고 편리하고.. 이런 사고방식이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것, 느끼는 점이 정답이고 완벽하다고 우길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생각해 내거나 고안해 낸 더 좋은 경험, 해결 방법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검증해서 보편화해야 한다. 그 과정이 다음에 이야기할 프로토타입이다.
Prototype(프로토타입)
프로토타입은 시제품이다. 처음 아이디어를 구체화 하면서 그게 실제로 어떤 모습이거나, 어떤 식으로 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는지 확인해 보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프로토타입은 예외없이 조악하고 거칠고, 단순하게 마련이다. 아이디어가 실제 유효한지,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지, 최소한 가능성 범위 안에 있는지라도 알아낸다면 첫 프로토타입은 소명을 다한 것이고, 그 단계는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디자인 싱킹 프로세스를 여러번 오가는 동안 프로토타입도 반복되며 점점 정교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프로토타입이라 하면서도 준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이전 직장에서도 출시 기한에 맞추느라 프로토타입을 못 해 보거나, 해보더라도 거의 완제품을 만들어 놓고 테스트하는 것으로 갈음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프로토타입이 아니다. 프로토타입은 최소한 초기 단계에서부터 실행되어야 하고, 처음엔 무조건 허접할 수 밖에 없다. 모나리자의 밑그림도 수 없이 많은 수정이 있었던 것처럼. 만약 누군가 처음부터 완벽한 프로토타입을 만든다고 한다면 그것은 뜨거운 아이스크림처럼 어불성설이고, 실제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보면 된다.
"완벽한 프로토타입"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 가지 정도가 주요 원인인 것 같다.
첫째, 조직이 가진 시간과 리소스의 한계
둘째, 개발자, 연구자들의 완벽주의
셋째, 시제품에 지나치게 많은 기대와 욕심을 내는 윗사람들
첫 번째 원인은 안타깝고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있는 반면, 두 번째, 세 번째 원인은 체면과 회사 내 세력다툼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완벽한 프로토타입이란 모순을 해결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전 직장에서 글로벌 브랜드 가이드를 만들 때 프로토타입을 철저하게 만들어 보았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비용도 제법 소요됐지만, 프로토타입을 해 봤기 때문에 완성된 가이드는 현장 적용성이 좋았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글을 쓸 예정이다.)
만약 시간 부족 때문에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최소화한다면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한다. 출시 시간 단축시키려다 완제품에서 대실패 한 갤럭시 노트7을 보라.
디자인 싱킹은 별에서 온 그대처럼 어느 날 뚝 떨어진 것이 절대 아니다.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 자체는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각화의 방법과 직관적 방법을 얼마나 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가 성패를 결정짓고, 다른 방법이 줄 수 없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한 가지, 디자인 싱킹의 프로세스는 절대로 선형적이지 않다. 각 단계를 순서대로 거쳐 결론에 이르는 것은 비즈니스 싱킹의 장점이고, 디자인 싱킹에서는 끝까지 갔다가 중간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한 두 단계 건너뛰고 가거나, 징검다리로 진행되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때로는 죽을 만큼 지루하게 반복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