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를 위한 도움닫기

조금씩 원하는 일에 다가가기

by 크리스탈

커리어도 점프력이 필요하다


C사에 있을 때 일이다. 영업과 전사프로모션을 거쳐 부서이동을 하게 됐는데 광고 업무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광고팀에 TO는 없었다. 광고팀은 인기가 많은 조직이라 가고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고, 줄을 선 대기자도 많았다. 나같은 말단에게 그 자리가 주어질 리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2순위로 생각하고 있던 마케팅팀으로 갔다. 내 생각대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소비자이벤트를 하는 일은 신나는 일인데다, 광고팀이 하는 일은 결국 시장에 나온 내 상품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해 하는 일이니 마케팅은 사실 광고팀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이나 컨셉을 알고 광고를 하게 되면 더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리고 마케팅 열심히 하다가 광고팀에 TO가 나면 아무런 관련없는 일을 하다 지원하는 것보다 가능성이 더 높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마케팅팀에 배치 받은 뒤 1년 정도 후, 회사 전반의 조직개편이 있었는데, 마케팅조직이 상품기획 업무를 주로 하는 PM이 아니라 제품브랜드를 책임지는 Brand Manager 제로 바뀌었고, BM의 업무 영역에 광고가 들어갔다. 그 전까지 PM들이 아무리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도 광고만은 전사 광고팀에 다 넘겨져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광고가 만들어졌었는데, 이제 해당 제품브랜드 매니저가 광고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하늘에서 감이 떨어진 셈이었다. 한참 재미를 붙여 가던 마케팅 업무를 계속하면서 부서 이동을 할 필요없이 광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인데, 기획 단계의 브랜드 컨셉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게 돼서 무척 신이 났다. 물론 내 컨셉이나 기획, 인사이트가 비루하면 광고 품질도 엉망일 것이고, 광고효율도 좋지 않고, 매출이 안나오는 책임도 톡톡히 치뤄야 하지만.


운이 좋아서 애초부터 광고팀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내 인생은 좀 다르게 풀렸을까? 나는 의도치 않게 영업으로 시작해서 이벤트를 하고, 마케팅을 하게 됐는데 광고까지 할 수 있게 된 운 좋은 케이스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순서가 딱 좋았다. 영업에서 제품을 팔면서 현장을 알았고, 마케팅을 하며 소비자를 이해하는 것부터 배웠으며, 광고라는 당시 마케팅 업무의 결정판을 겉멋에서가 아니라 본질을 위해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 이후 옮긴 직장에서는 광고를 원없이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회가 왔고, 때가 왔구나 하며 즐기며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분명해 진 사실은 광고팀을 갈 수 없다고 아무데나 편해 보이는 곳을 가지 않고, 나름 계획적으로 광고 업무와 가장 가까운 마케팅을 선택한 것이 가장 잘 한 선택이란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지인 중 한 명은 원하는 외국계 기업으로 가기 위해, 같은 외국계 기업이지만 다소 이름이 없는 곳을 먼저 갔다. 대기업과는 다른 생리, 한국 기업과는 다른 문화를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에서 알고, 업무로 승부 볼 수 있는게 더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경험을 했고, 이후 원하는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재작년 외부 강의를 할 때, 한 수강생이 그 당시 영업직에 있는데 마케팅 조직으로 가고 싶다며 어떻게 하는게 좋겠냐고 문의를 했다. 회사의 조직구조를 조금 물어보니 영업기획 업무가 있었고, 영업과 마케팅은 아주 밀접하다고 했다.(당연히!) 그런데 현장 영업에서 바로 마케팅부서로 옮기는 것은 부담스럽고 조금씩 준비하고 분위기도 익히면서 무리없이 이동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영업기획부서로 이동해서 영업관련된 부서들-마케팅 포함-과 네트웤을 만들고, 특히 마케팅쪽의 니즈나 관심사, 이슈를 주의깊게 보며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좋겠다고 했다. 당장 옮기지 않는다 해도 해당 부서의 부서장이나 팀원들과 라포를 형성하고 코드를 맞추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바깥에서 보는 마케팅이라는 일이 실제 어떤 도전을 받는지, 좀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보는 기회를 가져 보려면 함께 일 하는 기회가 있는 부서에 가는 수 밖에 없다. 그 이후 부서를 옮긴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 잘 풀렸기 바란다.



뜀틀, 도움닫기로 정복하는 종목


체육시간에 뜀틀을 해 본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뛰어 넘어야 할 높이가 7단이라면 자신의 강한 체력이나 뛰어난 DNA의 능력만으로는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때 도움닫기를 이용한다. 이처럼 나를 도와주는 도움닫기가 커리어에서도 존재하는지 살펴보고, 그걸 잘 쓰면 바로 뛰어 넘지 못하거나 닿지 못할 곳에 도달할 수 있다.


내게는 마케팅팀이 광고팀으로 가는 도움닫기였는데, 나중에는 마케팅을 더 깊이있게 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광고라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 광고팀의 일원이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광고를 해 보기 위해 마케팅조직이라는 도움닫기를 사용했고, 광고가 업무 영역에 들어오면서 도움닫기로 썼던 일이 오히려 더 커져져버렸다.


내 지인은 덜 알려진 외국계 기업을 도움닫기로 썼다. 이후 옮긴 회사는 정말 잘 알려진 글로벌 기업이었는데, 앞서 근무한 회사 경력이 없었다면 옮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외국계에서 일하려면 일단 영어로 업무가 가능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보다 수평적인 조직에서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동료와의 관계 역시 한국 기업과는 조금 다르게 덜 끈끈하다고 할 수도 있고, 개인적이라 기댈만 한 곳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런 모든것을 먼저 경험하며 더 큰 조직에서 닥칠 상황을 대비했다고 할 수 있다.


도움닫기가 필요한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과 상관없이 상황이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형태와 범위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원하는 커리어에서 가장 가까운 분야나 회사를 공략해 보는 것도 좋다. 특히 인접 분야의 경험은 향후 커리어에서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로 손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커리어가 성장해 갈 수록 사람들은 다양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마음대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향후 5년내, 당연히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온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이 부족한 것이 있을 때도 도움닫기는 필요하다. 커리어 설계를 하면서 특정 역량이 필요한데 부족한 경우, 그 역량을 키우고 싶다면 그게 가능한 쪽으로 갈 수 있다. 그 역량을 더해서 커리어 점프를 다음번에 하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7단 뜀틀 높이까지 나를 올려 줄 커리어인지, 아니면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은 현재 상황과 별 차이 없는 포지션이라 다음 단계에 여전히 문제가 계속되거나, 원하는 곳에 다가가지 못하는 상황이 유지되는지 꼼꼼하고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결국 판단과 그 결과는 본인이 책임 질 몫이라, 입사 후 속았다거나 미처 몰랐다고 말해 봤자 자신의 생각이 짧음을 증명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커리어는 바로 다음을 생각하기보다는 그 다음까지 생각해 가면서 계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아무것도 명확히 원하는 것이 없거나, 정확히 어떤 일인지 짚어낼 수 는 없이 포괄적인 분야만이 파악되는 신입사원일때는 일단 무엇에든 부딪혀 봐야 한다. 그 외에는 이번과 다음까지를 생각하며 조정해 나가는 장기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음의 도움닫기


가끔씩 보면 서류전형은 백프로 합격인데 면접을 보면 번번히 탈락하는 경우가 있다.

Job description에 있는 모든 스킬, 경험과 역량이 있는데, 각종 이유로 거절을 당한다.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뭐가 부족한지 모르겠거나, 거절의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잘 알고 지내는 헤드헌터나 이직 경험이 많은 지인에게 본인의 SWOT 분석을 요청해 볼 수 있다. 스스로는 찾아내지 못하고 볼 수 없는 작은 틈이나, 어쩌면 면접에서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라거나 부족하다거나 하는 냉정한 팩트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밝혀진 사실에 많이 실망하고 압도되어 지레 좌절하고 겁을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팩트를 함께 찾아 줄 사람들은 조언을 구한 사람이 너무 낙담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게, 희망을 잃지 않도록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인게 좋다.


따뜻한 격려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마음을 토닥여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을 주위에 두는 것은 인생의 보호막을 한 겹 두르는 것과 같다. 조금 더 안정되고 든든한 기분으로 용기를 낼 수 있다면, 향후 펼쳐질 거절과 좌절의 상황에서도 견디고, 건설적 비판에 관대해 지며, 그걸 통해 더 큰 기회를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의 도움닫기를 할 수 있다면 인생을 잘 산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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