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나쁘게

본인도 모르는 나쁜 리더십

by 크리스탈

요 며칠 서울시장의 방송 출연 내용이 화제다. 뜨겁다 못해 타버릴 정도로 화력이 세다.

난 방송 출연장면 캡쳐를 봤는데 장면 하나하나마다 놀랍고, 이게 우리나라 수도를 책임지는 시장의 인권의식이며 리더십이란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모든 말과 행동은 기업에서 리더들에게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모든" 나쁜 행동들, "최악의" 케이스들의 집대성이다.


그와 비슷한 유형의 리더들을 많이 봤는데, 그와 같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지독한 자기중심적 인간이라 상대에 관심이 없고, 모든 것이- 온 우주가- 자신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특히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에 가장 억울해하며, 상대에게 관심이 아주 많다고 주장하는데, 잘 살펴보면 상대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이해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상황과 목적에 그 사람의 존재를 끼워넣고는 관심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방송에 나온 사례 중 새벽 조깅이다. 내가 운동을 하는데 직원의 건강을 생각해 함께 뛰자고 했다, 그런데 관심이 없다는게 말이 되냐는 식이다. 정말로 직원의 건강이 걱정됐다면, 그 사람이 평소에 무슨 운동을 하고 있는지, 하지 않는다면 조깅을 좋아하는지, 조깅을 할 물리적 조건이 되는지, 상황의 이슈가 없는지 등등을 알아보는게 정상이다. 그러나 그는 한달 넘게 염좌가 와서 아픈 직원이 통증을 무릅쓰고 달린 것도 몰랐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본인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 방송에도 보듯, 내가 밥을 먹었으면 모두가 먹은 것이고, 내가 퇴근하면 남들도 퇴근해야 하고, 내 생각에 결혼을 해야 할 사람이면 그 사람 의사가 어찌 됐던 결혼이 최대 현안이다. 그러니 가족과 저녁 약속을 한 직원에게 가족들과 같이 저녁 밥을 먹겠다며 무턱대고 끼어놓고, 메뉴까지 바꾸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장면 장면마다 한숨이 나오는 말과 행동은 그의 이력인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의심스러울 정도였고, 직업과 가치관이 일치하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진리


리더십은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것인데 보통은 단위의 책임을 지는 특정 지위(자리)와 한 세트다. 그런데 어떤 조직이 되었던, 낮은 지위에 있을때는 공감도 잘 하고, 이해의 폭도 넓던 사람들이 자리가 높아지면서 구성원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행동하는 도구가 아니란 사실을 잊게 된다. 급기야 자신보다 낮은 위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꼭두각시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자신이 나쁜 리더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주위에서 점점 더 자신 위주로 맞추어 주고, 의사결정권이라는 권력은 주위 사람들의 행동을 절대적으로 제어하게 된다. 그러면 반대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서 자신도 알지 못하게 나쁜 리더가 되고, 나쁜 리더들이 의도치 않게 많아지면 조직은 안에서부터 생기를 잃고 말라죽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갑갑한 직장생활, 스트레스 받는 상하관계라는 개인적 푸념이나 하소연에서 끝나지 않고 기업 전반의 문제로 확산된다. 힘들게 하는 상사, 소통의 부재나 왜곡 같은 요소들은 기업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근거다. 그리고 기업문화는 직장선택의 아주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그래서, 일찍 시작한 기업들은 십 여년도 더 전에, 늦게 시작했어도 5~6년전부터 기업들은 해악을 끼치는 리더십을 교정해 더 나은 조직문화를 만들고, 조직의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어떤 행동이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것, 하면 안된다는 컨센서스가 생겼고, 암묵적으로도 동의받지 못하는 일들은 삼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여전히 어려움은 많지만 최소한 사회 전반에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트렌드가 자리 잡게 된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이러한 기업문화를 개선시키겠다는 변화의 계기가 기업들의 도덕적 각성이 있어서는 솔직히 아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본질적인 차원인 기업의 이익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나쁜 리더가 있는 조직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평판이 나빠져 좋은 인재가 가기를 꺼리고, 더더욱 성과가 나빠진다. 결국 나쁜 리더가 있는 조직은 부정적 사이클에 빠지는데, 그런 단위 조직들이 많아지면 회사 전체의 분위기, 생산성, 이익과 평판이 당연히 나빠진다. 즉, 회사에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돈을 벌자고 하는 사업에서 돈을 잃게 되는데 그걸 두고 볼 오너나 경영진이 어디 있겠는가. 최근 십여년간 리더십 교육 열풍도 다 그런 맥락에서다.


만약 주위에 인력변동이 잦고, 사생활 전혀 없이 야근과 특근, 주말과 휴일 근무에 비생산적인 회의의 쓰나미, 그렇지만 연봉은 제자리 걸음인 회사가 이익을 낸다면 순전히 직원을 희생시켜 이뤄 낸 성공이고, 사람을 갈아넣어 만든 이익이다. 그런 회사는 지금은 멀쩡해 보이더라도 언젠가, 조만간 문제가 터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예전만큼 고립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고 있으며, 정보를 주고받고, 연대의 힘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특수성, 조직이 처한 상황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들고 나와 현상황을 비호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곳일 수록 최악의 리더들이 구성원들을 착취하고 있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자리가 높아질 수록 착취의 정도와 패악은 커진다. 그런 조직에 있는 것 같다면, 조직내 변화의 선봉에 서서 장렬히 전사하거나, 지독한 싸움을 하거나, 계획을 세워 탈출해야 한다. 구성원 한 명의 힘으로 바뀌기는 어려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사람들은 도구가 아니다. 아무 생각도 판단도 없이, 누군가의 손발 노릇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특히, 위계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이 인권과 존엄을 포기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계조직은 각 위계에 맞는 책임과 의무의 크기가 명확한 조직이라는 뜻이지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존재 자체이다. 자랑스러운 xx기업의 사람, 서울시의 공무원이기 이전에 ㅇㅇㅇ라는 사람 자체가 먼저다. 한 조직의 일원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는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권리에 결코 선행하지 않고, 더 높은 위계의 사람들이 판단할 일도 아니다. 쉽게 말해, 퇴근 후 저녁 시간에 대한 권리는 직원에게 있는데, 그것을 근무시간 중의 지위의 힘으로 빼앗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시장 비서니까 당연히 시장하고 함께 조깅을 해야 하고, 서울시 공무원이니 시장이 사온 빵을 의무적으로 감사하며 함께 먹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란 거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리더라면 그 조직은 불행한 조직이고, 리더는 구성원들을 망치는데서 끝나지 않고, 구성원의 삶을 이루는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망치게 된다. 그 프로그램에서 얼떨결에 같이 밥을 먹어야 했던 직원의 아내와 아이가 너무 안되어 보여 가슴이 아팠다.




공직사회는 기업보다 더욱 보수적이고, 위계가 엄격해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최소한 무엇을 하고 말아야 하는지는 이제 공직 사회에서도 인지하고 있지 않을까?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이 친구도 친척도 없는 천애고아에, 고립무원에 사는 것이 아니라면 기업에 다니는 친구나 선후배가 어찌 사는지, 언론에 소셜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이 어찌 변하고 있는지 분명 보고 듣고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회가 변해가는 만큼은 바뀌어가야, 시민의 삶, 국민의 삶을 위해 봉사한다는 그들이 진짜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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