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시절 고생은 의미있다
주니어 마케터 시절에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을 꼽으라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까대기, 소위 박스 노가다
2)마케팅전략 발표 세션
3)리서치자료 밤샘 정리
1번은 정말 에브리데이, 매일, 1년 365일 발생했다. 소비자조사 샘플, 영업용 소개제품 출고, 내부 임원용 출고, 출고 누락 물량 긴급대응 등등 경우의 수는 차고 넘치고, 박스 당 평균 6-8킬로가 나가므로 30박스만 해도 어휴.. 체력을 다지는데 참 좋았다.
2번은 주간업무미팅부터 반기, 연간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인데 전 조직이 다 모여 하루종일 주리를 틀며 듣고 자기 순서 15-20분 발표하는 것이다. 내가 왜 상관없는 제품 전략을 듣고 앉아 있어야 하냐고 불만도 많았는데 사실은 배우는게 많았다. 논리의 전개를 기막히게 잘 하는 사람, 논리는 없이 가설만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 시작은 맞는데 결론이 이상한 사람, 계획은 많으나 실행결과는 없는 사람 등등 다른 사람 발표를 듣고 있으면 어찌나 못하는게 눈에 쏙쏙 들어오는지 저건 아니지 않나? 근거가 뭐지? 너무 비약이 심한데? 데이터 분석 오류 아닌가? 숫자 계산 잘 못 했네 까지 온갖 실수가 한 눈에 보였다. 그와 함께 내 발표 자료의 허술함이 뭔지 알게 되니 뭐라고 디펜스하지 전전긍긍하기도 했고 다음번엔 누구보다 어느 선배보다 더 잘해봐야지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이때 전략 수립과 평가, 계획관리에 대한 트레이닝이 된 것 같다. 오류와 비약, 무논리와 비논리를 칼같이 내려치는 리더가 있었기에 도망 갈 자리도 없었고, 점잖은 비판은 물론 비웃음과 비아냥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날이 지나면 와르르 수정한 내용으로 결재받고 고!
3은 매월 정기적 시장조사 리포트 분석과 시제품 조사결과 분석 혹은 기타 랜덤으로 발생하는 소비자조사 결과를 분석 정리해 보고서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정기 시장조사는 닐슨에서 오는것인데 보통 오후 4-5시에 도착하는 자료를 받아서 요약자료 보고 이상한 부분은 전국 전체 sku를 다 뒤져 봐야 했다. 왜 갑자기 어떤 sku 실적이 뛰는지 어디서 뛰는지 왜 밀었던 제품의 프로모션 실적이 안보이는지 찾아내려면 모니터를 눈 빠지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너장으로 요약한 보고서를 다음날 부장님 책상 위에 슬며시 올려 놓으면 그걸 보시고 이거 이상한데?라는 질문쓰나미.
HUT라고 불리는 시제품 사용 조사는 보통 로데이터로 결과가 넘어왔다. 요약도 해주기는 하지만 마케터가 보는 관점은 항상 다르므로 자신의 가설에 입각해 데이터를 다시 보고 편견으로 결과를 오독하지 않기 위해서는 로데이터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가끔은 로데이터도 이상해서 기록한 설문지 재점검도 했다. 그래서 나오는 결론은 항상 그럴줄 알았다였지만 최소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리서치 자료를 쓸모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불끈불끈 하곤 했다.
저 3가지를 몇년이나 지독하게 반복했다. 마케팅 근본도 없고, 생각도 짧은 내가 그나마 천지분간 하게 된 트레이닝 방법인데 참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단단한 바탕을 만들어 줬다. 요샌 또 다른 방식으로들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