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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탈 Nov 21. 2022

소소상상 1

순간 스쳐가는 작은 생각들

가능한 안하려고 하지만 테이크아웃은 의외로 많이 한다. 음료부터 반찬, 거창한 차림음식까지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를 사가지고 오면 그야말로 다양성이 끝내주는 일회용기의 처리 파티가 펼쳐지는데 잘 씻어 분리수거를 하려고 보면 의외로 쓰임새가 좋은 것들이 많다. 딱 한번 음식을 담기 위해 만든 최소 퀄리티의 용기도 있지만 다회용으로 사용해도 충분할 것들이 분리수거를 하는 손을 망설이게 한다.

특히 특정 음식을 특정 분량으로 담기에 안성맞춤인 것들이 가끔씩 나타나면 호더가 되지 않기 위해 버려야 한다는 이성과 그래도 이걸 가지고 있으면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이 씨름을 한다. 이런걸 모으다보면 쓰레기집이 되는거야 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주로 버리지만, 가끔은 너무나 딱 맞춤같은 용기는 슬그머니 수납장에 숨겨 버린다. 언제 그 음식을 해 먹을지, 담게 될 지 모르면서 내가 한번 이상은 먹었다는 증거로 그걸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욕심이 이겨버리는 것이다.


문득 왜 이렇게 딱 맞춤 사이즈의 용기가 시판되는 제품으로 나오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시중에 나온 제품들의 사이즈와 재질이 부족한건 아닐 것이니 문제는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이리라. 너무 많은 종류의 잼이 있으면 아예 구매를 포기하는 것처럼 너무 많은 선택지에서 사용용도에 적당히 맞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며 불만스럽게 계속 살고 있는 소비자, 이게 오늘날의 소비자의 문제 아닐까. 기업 역시 더 많은 니즈, 소비자의 모든 니즈를 다 맞춰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욕심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미니멀리즘,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곤도 마리가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했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껴안고 사는 물건들은 설렘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이 물건을 샀을때의 기분, 느낌이 남아서 아직도 물건에 대한 설렘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버리지 못하는 소비자의 고뇌는 커진다. 종류도 다양한 세제류 대신 비누 하나, 다양한 사이즈의 냄비 대신 무쇠 솥 하나, 수건 두장, 이런 식으로 살 수도 있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렇게 살 수 없다. 소비자라는 명칭부터가 그렇지 아니한가? 소비하는 자, 돈을 쓰고, 자원을 쓰고, 감정을 쓰는 자. 소비하지 않으면 존재의 의의가 없어지는 자. 그 명칭이 사라져야 미니멀하게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과연 몇 개의 일회용기를 더 버려야 하는걸까?


사진 : 다회용기 공유 서비스, 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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